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과 시종일관 사랑과 우정 등 인류애적인 뮤지컬씬을 선사해 관객을 당황케 만들었던 인도의 ‘발리우드 무비’는 이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PiFan’)의 메인 섹션으로 자리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PiFan은 십 여 년에 달하는 시간동안 한국관객에게 생소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대륙 ‘인도’의 영화들을 소개해왔으며, 판타스틱영화제라는 특색에 걸맞게 매혹적이고 흥겨운 인도 영화들, 주로 ‘발리우드 무비’들을 엄선해서 상영해왔다. 파라 칸 감독의 <옴 샨티 옴>은 2007년 인도에서 개봉해 자국의 흥행 성적을 모두 갈아치워 버린 쾌거를 자랑하며 2008년 PiFan을 통해 한국에 공식으로 소개되었다.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두텁지만 많지 않았던 발리우드 마니아들, 혹은 인도영화 애호가들을 수면 위로 부상시킨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이 <옴 샨티 옴> 때문이었다. 2008년 PiFan에서 상영되어 엄청난 호응과 찬사를 받았던 <옴 샨티 옴>은 영화제의 반응에 힘입어 정식 개봉을 꾀하다 좌절되었지만, 이후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블랙>을 국내에 개봉시키는데 일조를 하게 된 셈이다. 2008년 12회를 맞이했던 PiFan에서 <옴 샨티 옴>의 명성을 기억하지 못하는 관객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장담해도 좋을 정도로 이 영화는 영화제 내에서 호평을 받으며 한동안 회자되었던 작품이다.
<옴 샨티 옴>이 훑고 간 발리우드, 그 열기 넘치고 아름다웠던 마살라 무비의 정수를 잊지 못한다면 지난 7월 15일에 개막해 올해로 14회를 맞는 PiFan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가 있다. <문나 형(Munnabhai)>으로 유명한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의 <세 얼간이 (3 idiots)>가 그것. <세 얼간이>은 발리우드 3대 칸(Khan)중 한 명인 아밀 칸이 주연을 맡은 발리우드 무비로, 2007년 자국 흥행 기록을 갱신했던 <옴 샨티 옴>을 제치고 역대 발리우드 흥행 1위, 북미지역 발리우드 영화 역대 수입 1위를 차지해 ‘흥행머신’이라 불리는 영화다. 영화는 공과대학을 함께 다녔던 두 주인공이 대학시절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었던 란초(아밀 칸)라는 친구를 찾아다니며 겪게 되는 현재의 모험, 과거의 플래시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3번 이상 등장하는 뮤지컬씬, 희노애락의 과정을 치밀하고 긴밀하게 다룬 극의 구성과 인터미션이 존재하는 러닝타임은 여타 발리우드의 특색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영화 속에서 물 흐르듯 매끄럽게 전개되는 유머와 감동적인 플롯들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발리우드의 탑 무비의 정상을 차지하고도 남을 정도로 유려하게 짜여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20대 초반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발리우드 톱스타 아밀 칸의 연기도 사랑스럽지만, 돈이나 명예를 좇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길을 개척해나가는 란초(아밀 칸)의 캐릭터는 적재적소의 위트를 던지며 극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너무나 탄탄하게 배치되어있다.
일반적인 발리우드 무비들이 아름다운 여주인공을 앞세워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를 앞세웠다면, <세 얼간이>은 남녀주인공의 애정씬을 다소 축약시키고 세 친구들의 우정을 부각시켜 ‘사랑’보다 ‘삶’을 아우르는, 더 나아가 ‘꿈’이라는 단어에 대해 익숙하지만 긍정적인 지향을 전제로 삼는다. 공학도들이 사용하는 소품에서부터 출발해 모든 소재와 에피소드들이 뒤틀림 없이 작용하고 있고, 영화는 꿈이나 환상에 대한 갈망만을 내비치지 않은 채 현실을 직시하고 밑바닥에서부터 계속해서 무언가를 창조해간다는 설정을 통해 더욱 더 드라마틱한 감동을 선사한다. <세 얼간이>의 각 캐릭터가 자아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인도 각지의 아름다운 풍경에서부터 50~60년대 인도의 리얼리즘을 표방한 시네마의 경향을 생각나게 하는 고전영화로의 오마주, 감성을 자극하는 대사와 노래 가사들은 ‘Two thumbs up’을 외치고도 관객석을 박차고 올라 앉아 기립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의 판타지를 선사해준다.

올해의 발리우드, 올해의 PiFan 상영작으로 망설임 없이 ‘최고’를 외치고 싶은 영화는 앞서 말한 <세 얼간이>지만 이 영화 외에도 자국과 북미, 영국 등에서 엄청난 흥행을 불러 일으켰던 발리우드의 거물들이 함께 부천을 방문했다. 인도는 물론 외국에서도 끊임없이 상영되고 회자되었던 1928년 사랏찬드라 샤테지의 고전소설 ‘데브다스’를 리메이크한 아누락 카쉬얍 감독의 2009년작 는 <데브다스> 리메이크 시리즈의 일환으로 해외 인도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크게 호평을 얻었던 작품이다. 또한 비샬 바드와즈 감독의 <카미니>는 앞서 말했던 <세 얼간이>와 함께 <옴 샨티 옴>의 흥행 기록을 새롭게 갱신해 자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둔 범죄영화. 헐리우드의 전형적인 누아르의 느낌은 살아있지 않지만 기존 발리우드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코믹과 액션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범죄영화의 형식에서 조금 벗어나 B급 정서를 다분히 품고 있다는 평가를 얻은 작품이다. 달콤하고 씁쓸한 발리우드 러브 무비인 <러브 아즈 깔>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사랑의 궤도를 라이브하게 밟아 내려가는 로맨스 영화로 개막 전부터 많은 관심을 얻었던 영화다.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타브 밧찬의 <유령친구 부트나스>처럼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판타지 영화인 수조이 고쉬 감독의 <알라딘>도 부천을 찾았다. <유령친구 부트나스>에서 가상의 유령 ‘캐스퍼’ 역할을 맡았던 아밋타브 밧찬은 <알라딘>에서 위트있는 지니(지니어스)의 역할을 맡았다.
<세 얼간이>를 포함한 다섯 개의 발리우드 무비들은 판타지 장르의 중심인 PiFan에서 다시 한 번 한국의 관객들을 기다린다. 진정한 축제, 진정한 판타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행복하게 극장 문을 나서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 것.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묘사, 혹은 그럴싸하게 포장된 미장센 하나 없이도 긴 시간 동안 긴장을 늦추지 않고 관객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건네는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발리우드. 올해도 양질의 발리우드 무비들이 두 손을 크게 벌리고 당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