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에는 사람 수 만큼의 인성과 개성이 존재한다. 이 말은 지구상 인구의 숫자와 일치하는 가짓수의 생각과 취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물론, 모두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차피 뻔한 것 아닌가요?” 그러나 단순한 것은 제한된 시스템, 혹은 필터로 걸러진 세상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좁은 시야일 뿐,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은 절대로 뻔하지 않다. 곧잘 나의 협소한 사고방식과 논리체계의 허들을 훌쩍 뛰어넘는 사람들 앞에서 놀라움과 무한한 열등감을 함께 느끼곤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다양한 사람들을 다루는 사회의 시스템은 끔찍하리만치 한정적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남자/여자, 화이트컬러/블루컬러, 서양/동양 등 이 사회에서 사람들을 유형화하는 기준은 어떤 것이든 3가지를 넘지 못한다.

제임스 라이트만 감독의 신작 <인 디 에어>는 어느 해고전문가의 부유하는 인생의 단면을 포착한 영화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배우)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해고대행사 직원 라이언은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시스템의 낙오자, 혹은 석방자들에게 그들이 이제 막 고삐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놀랍게도 시스템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해방감이 아닌, 공포와 분노를 표출한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 호소와 해고전문가를 향한 비난, 이 두 가지가 이들의 주된 래퍼토리이다. 미안하지만 전후 맥락이 생략된 이들의 하소연은 관객의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오히려 자본주의의 합리주의를 좀 더 공고히 하는 듯하다. 사실 유능하다면 회사에서 해고당할 이유도 없고, 상사가 아닌 해고 전문가에게 감정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품위가 없는 행동으로 비추어진다. 즉, 이 영화는 명백히 자본주의의 구조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라이언은 시스템의 속박을 건너뛰는 자유롭고 가벼운 삶을 추구하는 듯하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고, 이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할 줄 알며, 시스템의 가장자리에 얹힌 달콤한 토핑 크림(마일리지)에서 삶의 행복을 느낀다. 심지어 이것은 현재 그의 삶의 목표(천 만 마일리지 달성)를 차지하기도 하다. 그의 강연은 항상 이렇게 시작한다. “여러분의 가방 속에 현재 짊어지고 있는 것들의 무게를 느껴보세요... 집, 차, 사람들... 여러분들은 정말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해낼 수 있습니까?” 그에게는 회사, 공항, 호텔, 포럼 등 심지어 가족과 연인까지도 모든 것을 시스템의 공식에 대입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그 해결법이라는 것은, 향유와 도피 사이를 부유하는 것이다. 그가 공항과 기내에서 느끼는 안정감에서는 라이언이 그토록 경계하는 소속감의 기류가 감지된다.
영화는 중반부 새로운 등장인물과 함께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자, 시스템이 적응의 문제라고 치자. 그렇다면 그 시스템이 변화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라이언의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나탈리가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 해고 시스템을 개발하자 라이언의 공중 위의 삶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그녀는 라이언과 함께 미국 전역을 돌며 그의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그토록 확고해보이던 사고방식-무소속에 대한 찬양-마저 흔들어 놓는다.
이 영화는 차가운 온도로 시작해 잠시 훈훈하게 극장을 달구는 기색을 띠지만 종착에는 다시 얼음점으로 복귀한다. 라이언은 이상적인 여인을 만나고 관계를 향한 첫 발을 내딛지만, 결과는 그의 섬을 더욱 고립시키고야 만다. 나탈리를 위해 마련한 작은 해피엔딩조차 그녀의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소속을 지켜보는 자조어린 축하일 뿐이다. 전반부 강자생존의 자본주의 시스템 선전 장면과 후반부 라이언의 여동생 결혼식에서 보이는, 미국이 그들의 뿌리라고 공고히 자랑스레 여기는 가족주의는 놀랍게도 같은 사회아래 공존하고 있다. 좀 섬뜩하지 않은가? 이 억지스러운 동침의 미래가 진심으로 걱정되는 까닭은 우리의 시스템 역시 이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을뿐더러, 점차 격차를 좁혀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신) 이 영화의 묘미는 <주노>에서 선보인 바 있는 감독의 ‘대사발’일 것이다. 그러나 섹시하고 세련된 대사를 힘겹게 따라가는 한국어 번역이 이 영화의 매력을 전달하는데 필터로 작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