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문영(영화평론가): 영화는 잘 보셨는지 궁금하다. 이 자리에는 홍형숙 감독님과 경순 감독님께서 나와계시다. 두 다큐를 보고서 느끼신 바들이 모두 다를 것 같다. 말 그대로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보고 서글픈 느낌을 가지신 분도 있을 것이고 송두율이라는 문제적 인물에 대해서 깊은 연민 혹은 뭔가 궁금증, 호기심 혹은 어떤 분들은 거부감을 가진 분도 있을 것이다. 이 자리는 <경계도시>와 <경계도시2> 두 다큐에서 지속적으로 나왔던 정치적 쟁점을 다시금 반복하고 토론하고 하는 자리는 아닐 것 같다. 영화 자체에 대해서 그리고 송두율이라는 인물의 역경에 관해서 인물과 함께 관찰하는 것을 담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감독님 모시고 제작과정에서 있던 어려움들을 이야기하는 소박한 자리가 되면 어떨까싶다. 우선 감독님께 질문이 있다. <경계도시2>를 곧 선보이게 될, 일종의 개봉에 앞선 프리뷰로 관객에게 보여지는 자리일 텐데 간단한 말씀 부탁드린다.
홍형숙(영화감독): <경계도시>와 <경계도시2>를 같이 보신 분들은 좀 더 많은 생각들이 스칠 것 같고 <경계도시2>만 보신 분들께는 한편으론 상영 끝나고 나서 죄송스런 마음도 들었다.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아서 말이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업하면서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후에 영화 촬영 중 있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말씀드리기로 하고, 욕심내고 어떤 바람이 있다면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 그랬듯이 거울 하나를 보는 것 같은, 그러니까 ‘아픈 거울’을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촬영 끝나고 난 후 2004년도에 일단락하고 2년 정도의 기간을 거치면서 이걸 어떻게 소화할 것 인가가 숙제였다. 이 숙제를 풀어나가는 과정, 질문을 던지고 솟아나는 여러 감성, 감정에 대해 정리하고 이러면서 그 과정 자체가 질문대답 자문자답이었다. 그 결과를 <경계도시2>로 보시면 될 것 같고 감히 바라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게 우리 스스로의 자화상이라 본다면 어떤 지점 나와 닮았다는 것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하나의 작은 거울을 가지고 돌아가시면 좋겠다.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사라지고 망각되는, 기억 저편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걸 끄집어내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다.
허문영: 같은 다큐멘터리스트로서 경순 감독님께서 영화를 보시고 각별함이 있으셨을 것 같다. 개괄적인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경순(영화감독): 내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건 여러 번 해봤는데 패널로 참여하기는 처음이다. 의미있는 자리기도한데 허문영 평론가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나는 영화감독이고 때문에 보는 입장이 남달랐다. <경계도시>를 처음 봤던 건 부산에서였는데 그때 영화에서 나오는 앞부분의 이야기, 송두율 교수가 입국하고 대한민국 사회가 달아오르는 시점에 사실 그 영화가 상영되었었다.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해운대 앞바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송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대부분의 화두를 던지는 지인들 중에는 작가들도 있고 영화감독도 있고 친구들도 있었는데 영화가 어땠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화살이 송교수 개인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도 송교수가 정직하지 않은 것이 기냐 아니냐 이런 이야기가 많았다. 다시 돌아봐도 그렇고 대한민국은 너무 많은 일들이 있잖나. 우리가 모르는 일이 훨씬 많다.
송교수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 역시도 송두율을 알긴 했지만 수많은 서적이나 철학 등 그에 관련된 상황을 잘 모르던 상황이었는데 그 사람들이 일단 여러 전황으로 언론에서 나왔을 때 우리가 무슨 기준으로 이것을 판단할까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기억인 것 같다. 그리고 그 후에 2009년 부산에서 <경계도시2>를 보게 됐다. 작업 중이었기 때문에 부산은 거의 쉬러 내려간 입장이어서 영화를 많이 안 봤는데 유일하게 본 영화 두 개 중 하나가 <경계도시2>였다. 이걸 보면서 그날 하루 종일 벅찬 감정에 빠져있었다. 나는 관객이기도하지만 감독으로서 같이 다큐를 만들며 고민했던 여러 지점들이 눈에 보이고 마음에 와 닿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홍 감독의 고민과 마음이 겹쳐지는 부분이 너무 많아 영화 끝나고 나서 홍 감독을 기다리다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고 그렇게 새벽까지 밤 새워 이야기를 했다. <경계도시2>를 다시 돌이켜보는 의미로 보면, 나는 개인적으로 신문기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기도 하지만 언론 기사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4대 일간지를 막론하고 심지어 진보언론조차도 읽고 나면 짜증이 난다. 이게 과연 기사인가, 기사라는 것이 무엇인가, 글로 전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어떤 건 너무 주관적 자기입장을 드러낸다. 굳이 조중동을 거론하지 않아도 뭔가 기사를 통해 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영화를 보면서 고민할 지점들이 너무 많았다. 무엇을 좇고 판단하고 놓치고를 돌아보게 했던 영화였다. 내 자신 뿐 아니라 전체적 시점에서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아는 홍 감독 스타일은 나와 영화스타일은 워낙 다른데 완벽주의자다. 이런 사람이 이 소재를 택하고 작업하는 와중에 고민했을 수많은 것들이 굉장히 많이 담겨있어서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도 그랬고 <경계도시>에서는 너무 송두율의 옆에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 지점들이 있었는데 1편서 2편으로 넘어가며 감독의 치열했던 과정들이 확실하게 눈에 보였다.
허문영: 1편과 2편에 대한 이야기를 바로 해보자. 1편과 2편은 같은 인물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다르게 느껴진다. 중요한 차이는 대상과 카메라의 실질적 거리가 되겠고 그게 다른 점이라 생각한다. 1편은 확실히 대상에 아주 밀착한 상태로 잡혀져있다. 1편인 <경계도시>는 2002년에 제작했고 2편인 <경계도시2>는 작년에 완성하셨다. 1편을 다시 보셨을 때 그 안에 담긴 무언가가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홍형숙: <경계도시>는 2000년부터 작업했다. 내 인생 1/4, 그러니까 10년 정도가 두 편의 영화에 담겨있는데, 촬영하며 아이를 낳았고 내 아이는 이 영화 작업기간과 같은 10살이다.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큰 작업이 되겠다. <경계도시2>같은 경우, 1편은 송두율 이라는 한 개인을 조망하면서 한국사회에 관해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역점을 뒀다면 2편은 사실 뜻치 않고 자연스레 1편의 주인공이 입국 못 하는 상황에 있다가 바로 그 다음해에 들어오시게 된 상황이 되어 팔로우를 했던 것이다. 자연스러운 행태였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입국한 과정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간단하게 찍을 수 있겠다, 일종의 후일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었는데 당시에는 이게 소용돌이 속으로 치달을 거라 생각도 예상도 못했다. 송두율 교수는 3주 일정으로 왔는데 이게 길어지면서 하루하루가 파란만장하게 되고 송 선생에 포커스를 두고 오랫동안 모국을 떠나있던 철학자가 바라보는, 그러나 끈을 절대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모국의 대안의사 모습, 이 초상이 어떨까 생각을 많이 했고 그쪽으로 포커스를 잡았다. 결과적으로 석방이 전개되고 사건들이 몰아치면서 송 선생 개인에게만 계속 팔로우 포커스 할 수도 없었고 스스로 바라봤던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것들이 보여줬던 지점들, 그게 결과적인 포커스가 되는 상황이다. 자연스레 고심하고 할 수 밖에 없지만 1편의경우에는 입국할 수 없던 상황, 대부분 개인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촬영분량이나 묘사가 대부분 송 교수의 서재, 집 등 개인공간으로 국한되었고 상대적으로 평온을 맞았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좀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생각되었고 당시로서는 어떤 방송에서도 손대기 어려웠던 상징적 인물이어서 무조건적으로 보일 정도로도 편들기에 거리낌이 없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2편 같은 경우 그것의 연장에서 출발하고 이어지다가 상황에 부딪히면서 송 선생님은 물론이고 각자 사건의 핵심에 옆에서 지켜보고 바라보는 입장에서 조차도 조심스러워지니까 이게 단지 내 다큐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아니어서 단순 관찰 목적만으로 바라 볼 수는 없었고 내 스스로 처한 상황, 혹은 이 상황들을 받아들이는 나의 심리나 이성적 흐름에 대해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루에도 정말 시시각각 변하는 드라마틱한 상황이었고 이걸 소화하기 쉽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점들을 영화 안에서 발견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걸 보고 내가 영화를 준비하며 느꼈던 부분이 드러날 거라 생각한다.
경순: 질문을 하나만 드리고 싶다. 원래 홍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면 대사를 치밀하게 파고 드는 경향이 있지만 절대 주관적인 시선들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의 영화를 찍어왔데 <경계도시>까지는 송 교수님의 심정변화 포커스가 되었다. 근데 2편인 <경계도시2>로 오며 홍 감독의 시선이라는 게 드러났다고 본다. 이번 <경계도시2>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홍형숙: 영화 보시고 나면 여러 말씀들을 해주시는데, 예를 들어 최근에 송 선생은 어떻게 지내세요,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와 같은 질문들이다. 후의 일 혹은 송 선생 개인의 인터뷰가 영화의 마지막에 나올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분들이 많다. 이과 연관되어서 생각된다. 후일담이나 사건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고 회고하는 것들을 팩트로 맞춰보는 것이 분분했다. 별별 추측들이 난무했고 팩트를 맞춰보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인가 그리고 37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호소하고 평가하는 것이 의미가 있기는 하겠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일종의 기억에 대한 주관적 감정을 모으고 평가를 모으는 것들이 과연 현재적인 의미가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2010년에 개봉하게 된, 그러니까 현재적 의미로 받아들이려면 이전의 과거사건에 관한 회고나 팩트에 관한 조립을 하기보다 조금 더 강한-감독 스스로의 일정 감성과 이성의 흐름을 드러내고 고백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 한다 생각했다. 소용돌이 속에 있던 자로서 발언자격을 스스로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다보니 직접 나래이션이 듣기는 불편하셨을 지도 모르지만 <경계도시>와 <경계도시2>의 나래이션은 분명히 톤이 다르구나 느끼셨을 것이다.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다큐감독들에게 쉽지 않은 선택인데 그 선택을 한 건 결국 나를 드러내지 않고 소용돌이를 설명할 수 없다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상황을 피해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한편으로는 관객들에게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선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적극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를 통해 목소리에 대해 반응을 하지 않을까, 공감이든 논쟁이든 이야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최종적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허문영: 그럼 1편의 목소리가 약간 높고 불안정하게 들리는 것이 연출이었던 건가?(웃음)
홍형숙: 사운드 믹싱을 할 때 표영수 감독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이렇게 독립영화 쪽에서 스스로 나래이션을 치는 경우는 사운드실에서 엄청난 고생을 한다. 나 같은 경우 몇 차례 녹음한 걸 최대한 뽑아낸 것인데 1편은 살짝 졸릴 수 도 있는, 좋게 말해 ‘은은한’(웃음) 편에 속한다면 2편은 의도적으로 톤을 긴박한 상황을 전하는 리포터처럼 의도 해봤는데 그게 어떻게 들렸을 지는 잘 모르겠다.
허문영: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런 경위로 1편과 2편은 여러모로 다른 작품이 된 것 같다. 1편은 카메라가 대상에 밀착해 발언하게 하고 최대한 이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반면에 2편은 카메라 스스로 혼란에 빠진 상태를 좇아간다. 흥미로운 건 이 부분이다. 1편에서는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갈 동안 관객으로서의 나는 거리를 두고 보게 된다. 거리를 두고 보게 만드는 일종의 매카니즘이 있는데 2편에서 오히려 카메라가 멀어지고 혼란에 빠진다는 순간 자발적인 태도가 생기더라. 흥미로운 대비가 아닐까싶은데 이런 감상이 이상한 건가?(웃음)
경순: 그 말씀하시니까 송 교수님이 감옥에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말이 떠오른다. 감독이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나는 그냥 2편에서 감독의 고민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게 나의 상태였고 지침 없이 내가 빠질 수 있던 함정으로부터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당연하게 그 지점이 보였다. 1편의 밀착구조는 감독의 개인적 상황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베를린 가서 작업을 시작하고 임신하고 빨리 촬영 끝내고 귀국하려했으나 이게 질질 끌어지지 않았나. 궁금했던 건 송두율 교수님이 뮌스터대학에서 가졌던 학생들과 관계 등이었고 그 시점에서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실절적인 상태도 궁금했는데 이것보다 감독의 개인상황이 감안되지 않았을까 싶다.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접근하든지간에 관객은 솔직함에 따라가는 것 같다. 1편에서 송 교수님에게 주었던 애정처럼 2편도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접근했던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뉴스나 기사와는 또 다른 영화만이 가지는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돌아보지 않으면 사실 잘 모르잖나. 지난달에 내 영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여기서도 상영했는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대한 그 영화를 보았을 때도 막상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르잖나. 그것처럼 홍 감독님이 <경계도시>라는 영화를 고민 속에서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2010년 이 시점의 대한민국에서 어떤 고민과 송두율 교수가 지은 죄 혹은 탄압이 무엇인지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갖지 않나 싶어 감사하다.
허문영: 저도 60년대 초반 생이어서 느꼈던 것이지만 1편을 보고나서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다. 잘 다듬어져진 특유의 다큐임에도 불가하고 세대가 가진 전형적 재외 진보지식인상에 생각을 하는 어떤 경이의 순간은 없었다. 근데 2편은 보고 깜짝 놀랬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기록은 정말 중요한 기록이다.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중요한 기록이고 중요한 다큐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찍는 과정이 고통이었고 고통을 감내하며 찍기는 했지만 일단 카메라가 송두율이라는 ‘긴장’을 하면서 버텨내는 것이 심리적으로 높은 긴장을 주던 것 같고. 대책회의장면은 정말 놀랍지 않나. 이런 기록을 우리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나와 비슷한 의견 가지고 있군 이라 생각했던 분들이 모여서 다른 의견들 속에 언성도 높이고 고함지르고 하는 게 굉장히 솔직했다.
경순: 기자들이 기사 이야기하면서 서로 맞춰보는 것도 재밌지 않나(웃음).
허문영: 어쨌든 이 기록은 정말 중요한 기록이고 몰래카메라보다 긴장할 수 밖에 없는 대상 앞에서 버티고 그걸 지속했다는 지점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러 어려운 장면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거의 전부가 그랬겠지만 유난히 어려웠던 장면들이 있으셨는지.
홍형숙: 영화를 보고난 후 생각나는 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송 선생님이랑 독대를 했던 대목이다. 2004년도에 베를린에 돌아가고 나서 1년 정도 있다가가 베를린으로 가서 인터뷰를 며칠 했었다. 여기서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당시 같은 경우에는 과연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게 되더라. 입국하고 난 후 시차와 강도 높은 조사 등이 계속 되는 상황, 그가 놓여진 상황은 보통사람은 겪기 힘든 그러니까 ‘일상적인 것’이 전혀 아니잖나. 강도 높은 긴장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고 들어야하는 이야기들도 많고 그런 상황에서 말 그대로 인간적 다큐카메라고 뭐고 상관없이 그가 처해진 상황은 정말 누구도 쉽게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하는데, 그런 분에게 카메라를 놓고 나는 다큐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걸어보려고 했지만 이 사이에서 과연 내가 어떤 걸 선택하는 게 옳은 것인가 고민이 되더라. 물론 다른 다큐멘터리스트들은 각각의 선택을 했겠지. 나는 카메라가 수없이 많은 기자들에게 휘둘려지는 상황 속에서 내 카메라가 여기 있으므로 얻을 수 있는 팩트, 남다른 팩트나 심경이 있었을 텐데 그걸 선택하기보다 사람에 대한 일종의 기본적 예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게 어떤 가치있는 것이나 그런 판단은 아니고 다만 그런 긴장감이라는 건 고민을 하게 했던 지점이다. 만들기 시작한 게 20년이 넘었는데 그 분수령에 있던 상황이었다. 대책회의 장면 같은 경우의 설명을 하면, <경계도시2>를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는 최소 3대 기본으로 집중되어 입국부터 구속까지 한 달이 걸렸는데 이때까지 숙소바로 옆방에 자릴 잡고 합숙하며 촬영했다. 그날은 새벽이었는데 옆방에서 듣고 있으니 고성이 들리더라. 물론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는데 일이 났다는 생각에 같이 지켜보고 찍었던 기억이 난다. 찍어야만 하는 것과 찍으며 고통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는 것은 참 겪기 힘든, 감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더라. 그때 살짝 이걸 내가 계속 해야하는 것인가., 이 상황에서 접고 벗어나야 하나를 생각했다. 강석필 프로듀서가 그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이걸 쓸지 아닐지는 전혀 모르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이 분이 어떤 다큐리스트가 그 같은 상황에 놓여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느냐라는 말을 해주었다. 너는 기회를 가진 거다라고 말을 할 때 그게 엄청 선명하게 들어오더라. 어떤 고민도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최대한 만족할 때까지 찍자, 그래서 끝까지 찍었다.


허문영: 시간이 얼마 없는데 사실 두 분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더 많기는 하지만 시간관계상 객석여러분들께 질문을 돌린다.
관객1: 이 영화가 다면적인 거울이었다 생각하고 내가 경계도시에 사는 구나를 절실히 느꼈고 송 교수가 경계인으로 살지만 코리아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생각한다.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당장은 아니어도 상업적 영화관에서 성공하건 아니건 간에 <경계도시3>을 10년 후에 완성시켜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형숙: 정말 감사하다. 깊이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관객2: 저도 비슷한 맥락이다.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회의 장면에서 물리적인 피로를 체감할 수 있었고 최인훈의 <광장>이 반사적으로 생각났다. <광장>이 단행본으로 나온 건 1961년이었고 지금 50년이 지났지만 저렇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답답했는데, 조금 홀가분해진 기분이 들었다. <경계도시3>이 궁금하다.
홍형숙: 말씀주신 것처럼 <경계도시3>을 만들어야 하는 건 어떤가 권하는 분들이 상영하고나면 한두 분씩 있는데 이게 마치 숙제를 안은 것 같은 생각도 해본다. 다만 그런 생각은 든다. 1편과 2편까지가 10년이라면 그 10년 사이에 뭐가 그리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한국사회는 2003년도부터 얼마나 멀리 왔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경계도시2>에서 <경계도시3>을 만든다면 기간이 얼마가 걸리든 <경계도시3>에 담겨지는 한국사회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3편이라면 힘을 받아서 용기를 내서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인상적이고 강한 부분이 회의장면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저 장면 안에서 자막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는데 이게 개인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분들은 사실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지려했던 분들이라 생각한다. 그것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 입장에 공감하거나 그렇지 않아도 관련자들 뿐 아니라 친구의 자격으로 선의로 상황을 벗어나게 하고 싶은 그런 것이 컸던 걸까 생각한다. 개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저 안에, 테이블 안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에서 나의 모습들을 본다. 그 안에서 한 사회를 나타냈던 모든 것이 개개인의 모습을 통해 상징화 투사된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짊어졌던 것이라면 당시 사건이 벌어지면 의미있는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도록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결 주시는데 어려워했다. 민감한 사안이었고 정말 외롭던 싸움. 그런 의미에서 보면 관망하거나 판단 유보하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영화 밖의 분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허문영: <경계도시2>의 어떤 인물도 흔쾌하고 맘 편히 이 영화를 볼 수 없을 것 같다. 모두에게 조금씩 불편한 영화고 다큐가 가진 역설적 가치가 있는 영화다.
관객3: 영화 잘 보았다. 영화를 보며 대책위 안에 없던 게 얼마나 한국인으로 행복한가를 생각하며 장면을 보는 동안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너무나 소중한 한국현대사를 만들어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감사드리고 홍 감독처럼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한국이 의도치 않게 대단한 걸작 드라마를 자청해서 공연한게 아닌가 생각 들 정도로 착잡하다. 이 영화에 관계되어 제 친구는 송 교수가 대한민국사람이었던 것 같다 말했는데 나는 전혀 반대한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계가 중요했는데 한국사회가 왜 그토록 그걸 싫어했을까,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판도가 달랐을까 하는 한국사회의 히스테리. 개인을 비롯해서 부인에게는 이게 너무 중요한 것이고 목숨을 걸고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념 투쟁에서 뿐 아니라 일상적 국면에서 경계적 상공간에 있는 존재양태나 실험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이 있게 아닌가, 진보진영까지도 폐인적인 유아적 반성찰점에 있는 듯 하다. 남북통일이 되어도 여전히 경계적 삶을 요구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경계인이라는 실존적 양태를 부정하려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질문이 있다. 눈에 띄는 장면이 있는데 송 부부가 한국에 와서 첫 모임을 가는데 송 교수가 송두율이라 사인을 하고 다음에 독일어로 치면 동반자였고 같이 경계인으로 살던 정여사가 사인을 하려하는데 그때 돌연 장면이 바뀌더라. <경계도시2>가 끝날 때까지 꼬리에 남아있었다. 영화주인공이 송두율 개인일 뿐인가 그렇지 않고 경계인을 거부하는 사회전체가 주인공이 되야 하는데, 실제로 대책회의에서 나타나듯 정여사가 가장 고집이 세고 말을 잘하는데 언제까지 개인의 자전적영화로 가져가실 건지, 사인장면 이 궁금하다.
홍형숙: 정 선생님 같은 경우 동반으로서 정치적 동지, 영혼의 교감을 하는 관계에 송 선생님과 놓여있었다. 영화를 보시면 이해하시겠지만 사건전개과정에서 내용적 핵심을 주장하고 강직하게 논쟁을 하고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했던 분이 정 선생님이고 그게 표현되어 드러나는 거다. 두 분이 함께 같은 당사자인거다. 남편 하나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었던 것이다. 정 선생님은 주장하고 했지만 송 선생님과 정 선생님 두 분이 기질이나 표현방식이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송 선생님이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유하게 잘 받아주는 기질의 성향에 비해 정 선생님은 귀담아듣지만 자기를 표현하거나 스스로 생각을 놓치지 않고 밖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장면을 끊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너무나 답답하다. 송 선생님이 답답한 것이겠지. 표현을 너무 안 하셨다. 내 이해는 그랬다. 그런데 저 자리에 그 누가 있었다 한들 섣불리 표현할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정 선생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 거슬리기는 했지만 내용적 측면에서 이 분이 충분하게 주장하고 계시다 생각했고 송 선생의 라인을 따라가 주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관객4: 대책회의 장면에서 피로와 긴장의 무게를 느끼다가 전환되는데,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전향하겠다 맘을 먹고 이것이 전개되며 유보적 입장을 취하던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진영에서 갑자기 무고적인 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빨갱이’가 아닐까 의심하던 사람들이 우리 편이 되어 국면 전환할 때에 나는 관객으로서 이 영화가 안심을 하는 것 같아 그 지점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전까지는 이 사람에게 너는 어쨌든 한국인중 하나가 되어 저들과의 싸움을 하는 우리가 되어라, 라는 사람들에 대해 오는 피로에 핍진감가지고 들어갔다가 정말 우리 편이 되었는데 이게 우려했던 상황에 적법하게 놓여지니 이상했다. 영화가 영화적으로 안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말이다. 밝은 날의 화면이 나오고 정확한 문장은 기억안나지만 급반전해서 우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 지점에서 어떤 판단과 선택이 있는지, 기록이 최선이겠지만 기록을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판단과 선택을 했는지 궁금하다.
홍형숙: 답변 드리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건 2차 기자회견이 있기 전 회의와 국면과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국면이 있고 난 후 구속되고 난 후에 과정에서 모여서 사건을 해결하는 그런 과정을 말씀하시는 건지? 제 생각엔 영화에 104분정도 되는데 2/3정도가 입국부터 구속까지를 포커스에 맞췄다. 논리적으로. 그 안에 나머지 부분에는 일종 사건의 후반기가 전개되는데 그 이유를 말씀드리면 자연스레 의문이 풀리지 않을까. 영화적으로 혹은 상황에 대한 해석으로 안도감을 가졌던 측면에서 표현했다기 보다는 한 달 동안의 시간을 집중하고 주목했던 것은 결국 앞이나 뒤, 입국 전이나 혹은 구속이후에 경우에는 한국사회에서는 일상이라는 용어로 말씀드리면 적절할 것 같다. 언론이 들끓었다가 구속까지 과정이 하나의 드라마처럼 아주 긴장감있게 되다가 구속된 이후 모든 것이 다 일종의 면죄부를 받은 것 같이 해결되는 느낌을 받는 건 우리가 일상으로 받아 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던 당사자는 구치소에 있고 이제는 우리가 그를 구명해야하고, 이건 너무 수순처럼 보였다. 그게 안도감 있는 표현이라기보다는 문제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한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구성원들이 드러냈던, 소위 보수진보막론하고, 혹은 당시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끄럽게 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록에도 없는 우리들, 그 안에 화두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제 판단은 그랬고 나머지 부분이 일종의 관습처럼 보이는 것. 우리가 그것을 자연스런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기에 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녹취·정리: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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