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장건재 감독 [회오리바람] 비평

 

평론가 토니 레인즈의 '영화언어에 능통한 감독을 발견하다'는 씨네 21의 특별 기고문 두 페이지를 읽고 당장에 집을 나서 영화를 보러 갔다. 집의 안팎으로 편재하는 영화들은 글로 부각되어 길로 나서려는 충동을 이끌어낸다. 글로 영화를 만나고 돌아와 다시 글로 쓴다.

 

첫번은 남의 애인, 가운데는 애인 그 사람의 자체, 마지막은 나의 애인. 영화는 불륜을 견디지 못한다. 영화는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불가해한 것은 영화는 마치 유월절의 문밖에 뿌린 어린양의 피처럼 불순한 것을 떠나가게 하면서도 계속해서 그 불순함을 확인하려 떠다니며 흩어지는 환영성의 물질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와 같이 바다로부터 전염성을 안고 마을에 도착하여 문밖에서 떠다니는 상태, 죽어나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장례 행렬. 마을엔 공포가 잠식한다. 하지만 그런 그를 불러들인 건 바닷가에서 그를 기다리던 '그 여인'이다. 영화는 종종 질식할 것 같은 진공상태를 경험하게 하면서 어떤 현상들의 진심과 그것의 진상을 드러낸다. 그것이 카메라 자체의 힘인지, 카메라를 집도하는 감독의 투지인지,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의 버팀의 결과인지, 어찌했든 영화 관람의 형태는 끊임없이 영화 자체를 현실에 속한 우리에게 실험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맥에서 장건재의 <회오리바람>은 현실을 견뎌내고 있는 영화이다. 불순함을 걸러내는 영화의 미학을 성취하고 있다.

 



첫 신에서 고등학생 연인인 태훈과 미정은 바닷가를 걷는다. 카메라는 그들 사이의 공기에 정확하게 들어선 것처럼 마구 흔들리며 우리를 어지럽힌다. 이 어지러움은 화면 바깥의 허밍 노래 소리로 인해 일정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첫 만남은 낯설고 어지러우나 그것이 지속되는 형태가 될 때 우리를 자연스러운 리듬 속에 위치시킨다. 가벼운 현기증이 현실로부터 부유하는 미세한 쾌감을 선사하는 장면이랄까. 이같은 것은 영화의 일정 순간들마다 반복되는데 우리의 감정을 계속해서 일정한 중량으로 다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어 영화는 정류장 앞에서 집으로 돌아갈 돈을 빌리는 태훈의 동정어린 모습과 마치 그와는 상관 없다는 듯 일관하고 있는 미정의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주머니로부터 돈을 빌려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로드 신은 마치 김소영 감독의 <거류>에서 고속도로 상에서의 신들, 바퀴를 보여주지 않은 채 버스의 뒷창을 응시하며 운동하는 진공적 움직임의 순간들(배경음악만이 흐르는)을 상기시킨다. 이어 영화는 밤의 도로에 빼곡히 들어선 차량들을 훑다가 화면의 가운데로 들어오는 긴 전철의 운동을 보여준다. 전철 안으로 들어온 카메라는 굽이 치는 철로 위에서 동일하게 휘어지며 텅 빈 객석의 느낌을 묘하게 만들어낸다. 이어 노선의 종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을 바깥으로 흩뿌려지며 바깥으로 빠지는 카메라는 프레임과 겹쳐있는 창 안으로 들어와 다시 전철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창 안에까지 미세한 소리로 연결되는 안내 방송과 그 안에서 키스를 나누고 있는 태훈과 미정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겹치면서, 영화는 현실의 표면을 미끄러져 들어와 마치 우리에게 키스를 건네는 것처럼 보인다.

이 바닷가 여행은 이들에게 마지막 연애의 시간이 된다. 집의 공간에 들어서면서부터 미성년자인 이들이 감내해야할 일들은 첩첩산중이다. 미정의 아버지는 한밤중에 태훈의 부모를 집으로 불러 들려 술을 권하더니 미정과 태훈에게 각자의 여행 보고서를 써오도록 한다. 하지만 이들의 기록들은 일치되지 않는 것이고 미정의 아버지는 '내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라는 말로 시작하여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과격한 폭력을 행사한다. 어른의 권력 앞에 고개숙인 태훈의 모습은 버스 정류장으로부터 집안까지, 그리고 학교로 이어지지만 그의 미정을 향한 애정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자꾸 도리질쳐버리는 미정앞에서 태훈은 좌절하기보다 다른 모색을 한다.

 

집을 나와 중국집에서 배달일을 시작한 태훈은 오토바이를 몰고 길 위를 달린다. 그 길위에서 태훈은 어머니의 승용차에 타서 학원으로 '배달되는' 미정을 창 사이로 마주치게 된다. 그는 미정이 들어간 엘리트 학원을 따라 들어가지만 그녀로부터 거부당한다. 태훈은 그녀 앞에서 화를 내보고 무릎을 꿇은 채 떼를 써보기도 하지만 그녀는 변화가 없고 오히려 건들이면 더 돌아설 것 같은 냉기를 보인다. 그들 사이에 무엇이 작동한 것일까. 운동복 차림의 짜장면 배달부와 입시 학원생이 된 그와 그녀의 만남은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바닷가에서 손을 맞잡고 흔들며 노래를 맞춰 부르던 그 사이의 공기, 그 공기들의 조직, 그것이 만들어내는 리듬에 어떤 힘의 변형이 작동한 것일까.

영화는 태훈이 중국 음식을 배달하는 신을 단 한번 보여주고 나서(독신남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에게), 계속해서 음식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아파트 승강기에서 (상거풀 수술을 한) 아주머니에게 음식물이 흘러 불쾌하다는 핀잔을 듣게 된 태훈은 아파트의 하수구 구멍으로 국물을 버리고 화단에 건데기를 버리게 된다. 그리고 나서 재빠르게 오토바이에 그릇들만 싣고 훌쩍 떠나버린다. 아주머니의 신고를 들은 경비실 아저씨는 뭐라 중얼거리며 그를 쫓지만 그를 훈계하고 통제하기엔 너무 늙고 벅차보인다.

 

영화는 바로 다음 신에서 태훈의 오토바이가 경비원 아저씨와 비슷해보이는 노인을 횡단 보도 앞에서 치게 되는 사고를 발생시킨다. 그 노인은 경비원과 동일인으로 보인다. 사고 현장에서 횡단 보도에 서있던 사람들이 다가와 안부를 물으며 응급 전화를 걸게 되는데 그 사람 중 한 남자는 바로 문제의 아파트에서 탕수육을 시켜먹고 남긴 그 독신남이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조연들을 다른 방식으로 위치시키면서 영화 내부에서 발생한 사건과 사람들의 인과성을 독특하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여하튼 이 사건으로 인해 태훈은 배달일을 그만두게 된다. 중국집의 사장은 하루 일을 마치고 나서 태훈을 식탁 앞에 앉힌 채 조용한 목소리로 '일은 오늘까지만 해라. 이 사고는 너와 나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며 급료가 든 노란색 돈봉투를 건내고 '밥 먹고가라'고 말한다. 이어 카메라는 눈 내리는 겨울 밤 '북경'이란 간판이 보이는 가게의 바깥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재정리하며 묵묵히 일을 하는 사장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한다. 이 식탁 앞과 그 창 밖에서 응시되는 미장센의 조용한 조화의 순간들엔 허우사오시엔의 분위기가 풍기기도 한다.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태훈은 폭력적인 어른들(미정의 아버지, 집으로 쳐들어온 학교의 체벌 선생님, 승강기의 상거풀 아주머니)을 경험하면서 비뚤어짐을 겪지만 다른 한 편으로 조용히 타이르는 어른들(사고 당한 할아버지, 중국집 사장 등)을 만나면서 들뜬 감정들이 가라앉고, 또 스스로 숙연해지는 상태들도 경험한다. 그는 중국집에서 번 돈을 몽땅 털어 미정에게 선물할 목걸이를 산다. 이 가게에서의 신에서 눈물이 났는데 왜냐하면 그 돈이 어떤 돈이고, 그 목걸이를 받을 대상이 지금 태훈에게서 이미 떠난 애정의 상대라는 것을 이미 관객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가게는 목걸이의 금만큼이나 호화스럽게 빛나고 점원들은 나긋나긋 친절하기까지한 것이다. 영화는 이어 선물이 든 쇼핑백을 앞에 두고 서툰 글씨로 카드를 쓴 후 최후에 남은 만원으로 햄버거세트를 너무나 맛있게 먹는 태훈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것엔 조금의 망설임의 흔적도 없어 나로부터 발생된 슬픔 또한 좌절되지 않는다.

영화는 3개월 후 태훈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일상으로 복귀한 상태를 보여준다. 태훈이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가득 담군 채 얼굴을 물 바깥으로 스윽 내민다. 화면 정중앙을 가득 매운 물먹은 그의 얼굴의 오른 쪽에 뒤돌아 앉아 몸을 씻는 나이든 남자 어른의 몸이 작게 보인다.

 

감독은 태훈을 정중앙에 위치시킨 채 화면 구석에서 작게 형상화된 어른들의, 노인들의, 세상의 조연들을 동일 선에 배치하여 영화만의 원근법을 구축한다. 태훈은 이제 열아홉이 되었고 미성년의 끝에 섰다. 태훈은 집 안으로까지 그를 잡으러 쳐들어온 학교 선생님의 폭력에 이제 학교의 밖을 나오게 된다. 학교의 담 밖에는 점점 숲이 펼쳐진다. 로케이션을 어떻게 했을까 경탄스럽기까지 한 장엄한 구도의 숲을 헤쳐나가는 태훈의 작은 상이 무척 인상적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전철의 들어옴에 응답하는 두 번째 전경인 것이다. 이 숲은 아직 겨울이고 나무는 메마르고 벌거벗은 상태이다. 그 숲을 스치며 힘겹게 바깥을 빠져나오자 까마득한 모래밭이 펼쳐진다. 지평선을 바라보며 걷는데 바다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그 끝은 수평선으로 변화한다. 바다에 도착한 것이다.

 

영화는 이 바다에서 영화의 도입부에서 (어른들로부터) 완전히 생략되어진 미정과의 여행의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 순간, 세상의 소리는 고요해지고 현실의 리듬은 변형되며 초반 우리를 약간 현기증나게 만들었던 부유의 순간에 대한 진심어린 장면들을 보여준다. 연인들의 장난스런 터치, 애정어린 눈길, 함께 손을 잡고 뛰어다니며 동일한 즐거움을 느끼려는 순간들. 영화는 연인들의 연애의 순간들, 마치 그 자체로 존재하려는 것처럼 관객의 텅 빈 마음 한가운데를 비집고 들어와 우리와 함께 한다. 태훈과 미정이 만들어내는 허밍소리가 화면 바깥으로 확장될 때 객석은 그 허밍안에 들어선다. 장건재의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되는 순간이다. 마치 회오리 바람의 정가운데 들어선 듯 아찔하다. 그와 긴 연애를 시작하고 싶어진다.

 

 

2010.03.07
김시원(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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