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데, 감독이 팀 버튼이란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과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팀 버튼표 종합선물세트다. 숲, 쌍둥이, 코스튬, 창백한 소녀, 동화, 짐승, 그리고 숨 쉬는 것조차 섹시한 조니 뎁까지. 그가 끊임없이 매혹당하며 집착해온 요소들이 이 영화에 총집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왜 이제야 팀 버튼이 이 작품을 건드렸나 싶을 정도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기괴하고 야릇한 상상의 세계는 감독에게 영화화를 향한 유혹을 부추기고 있다. 팀 버튼이 어떤 감독인가. 그는 잔혹동화를 직접 출간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심으로 포장한 인간의 그로테스크한 본능을 누구보다도 긍정하는 감독이라는 뜻이다.(관심 있는 독자들은 한국에도 출간된 그의 동화를 찾아보시길. 눈이 못으로 된 소년 등 해괴망측한 그의 상상력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동물과 사람, 큰 것과 작은 것,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따로 군더더기 각색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의 취향과 맞아떨어진다. 다만 원작과 비교해 달라진 점은 앨리스의 나이. 동화 속 꼬마 앨리스는 영화에서는 이제 막 성인에 다다른 나이로 설정됐다. 그러나 성적인 코드의 숲과 심오한 철학의 강으로 넘쳐흐르는 이 이상한 나라의 주인공은 본디부터 복잡한 머리와 불안한 마음의 19살 앨리스여야 맞지 않을까. 더 이상의 이유는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마음에도 없는 남자에게 청혼을 받고 주변으로부터 승낙의 외압에 시달리다 이상한 나라의 수장 토끼를 따라 도망치듯 ‘언더랜드’(원작의 ‘원더랜드’와 비교해 차이점을 보이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팀 버튼 버전의 원더랜드라고 보면 맞을 듯하다)로 빠져 들어간 앨리스. 그녀에게는 뜻하지 않았던 미션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공포치정으로 언더랜드를 다스리고 있는 붉은 여왕의 하수인 머리를 베고 하얀 여왕에게 평화통치의 주권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들로도 골치가 아픈 소녀는 이제 언더랜드의 영웅 탄생 신화를 완성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앨리스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좁혀지거나 현실로 컴백하고 싶어 하는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팀 버튼의 언더랜드가 현실과 똑같이 꼬이고 꼬인 갈등과 풀어야 할 숙제들로 복잡한 것은 꿈이 피곤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깐 쉬어가는 꽃과 꿀의 정류장이 아닌, 오히려 현실을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감독의 철학을 대변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앨리스가 언더랜드를 구조할만한 인물로 지목당한 이유는 그녀가 그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이기 때문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역시나 상상력이다. 하지만 땅 위의 몽상가들의 대우는 고금과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나 찬밥신세. 앨리스조차도 처음에는 ‘이건 꿈에 불과하니까’라며 꿈의 파워를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어둠의 극장에서 형광 빛 화면으로 2시간 동안 관객을 매혹시키는 것처럼, 미래는 꿈꾸는 미친 사람들의 것. 앨리스의 모험에 현실을 닮아 어둡고 무겁던 언더랜드가 원더랜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흑백의 운명은 이제 그녀의 찬란한 상상 앞에 무릎을 꿇어라.
(추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3D로 제작되었지만, 이 영화에서 3D효과는 그다지 탁월하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플랫한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감에 흠뻑 취하는 것만으로도 팀 버튼의 영화는 충분히 환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