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화면 위에 하얀 글씨가 콕콕 내려찍히던 단말기를 떠올려본다. 1990년대 초반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면 우체국에서 빌려주던 일체형 하이텔단말기와, 전화선을 연결해 접속을 시도할 때 들려오던 ‘치직~치직’하는 신호음을.
돌이켜보면, PC통신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들어온 이후 인터넷이 움트던 시절에서 시작하여, 한국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되는 1996년을 중심축으로 삼아, 바야흐로 이 땅에는 새로운 영화와 영화광들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었다. 그것의 본거지는 각종 PC통신의 영화동호회였는데, 이들은 각자의 취향대로 이합집산하며 영화에 대한 무수한 담론을 내놓았고, IT 벤처열풍에 편승한 영화포털 사이트와 매거진의 범람은 정보홍수의 시대를 예감케 하고 있었다. 사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통신마다 내로라는 영화고수들이 모인 ‘영퀴방(영화퀴즈방)’은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광적 기호를 드러내기 최적의 공간이자 무림고수의 대련의 장이었다. 자고 나면 생기는 영화관련 동호회는, 은둔고수를 자청하며 비디오를 섭렵하던 영화광의 집결지가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통신 공간마다 나름의 색깔을 유지하고 백가쟁명하면서 한국의 영화광을 끌어들이던 당시, 급기야 PC통신을 소재로 한 영화가 등장하게 되니, 장윤현 감독의 <접속>이다.

<접속>은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PC통신의 확산에 불을 붙인 동시에 한석규에게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서의 공고함을, 영화계에는 전도연이라는 새로운 여자배우의 탄생을 알려준 영화였다. 또한 영화 외적으로 보자면 당시 후발주자였던 ‘유니텔 UNITEL’을 급부상시키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하이텔과 천리안으로 양분된 시장에 뛰어든 삼성SDS의 통신접속프로그램 유니텔은, 깔끔한 화면과 사용의 간편성ㅡ초보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인터페이스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다.ㅡ을 무기로 경쟁업체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는데, 영화 속 인물들의 통신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PC통신과 채팅 붐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영화가 개봉된 1997년 9월의 첫 번째 토요일 오후, 피카디리극장 앞은 피시통신 동호회원들로 보이는 무리로 가득했고, (헝가리 국립영화학교를 수학한 ‘장산곶매’ 출신 감독의 작품이라는 편견을 날려버리기라도 하듯)당시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감각적이면서 스타일리시한 영상은, 피시통신과 채팅에 흠뻑 빠진 젊은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요컨대 장윤현은 격랑의 시대와 변화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현대인의 소외와 소통의 문제를 능숙한 솜씨로 알레고리화 한다. 때문에 (어쩌면 관객은) 사이버공간에서 만난 익명의 상대로부터 위안을 얻고 상처를 치유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혼란에 빠진 각자의 삶을 위로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영화가 흥행한 것은, 새로운 조류에 탐닉하려는 젊은이들의 감성과 일치한 점이 크게 작용했을 터이나, 이마저도 당대의 가장 선풍적 인기를 모으던 ‘피시통신’을 통해 펼쳐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7년이면 ‘386’이라는 단어가 막 태동하던 시절이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청춘들, 70년대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FM라디오와 DJ가 들려주는 Old Pop에 마음을 빼앗겼던 사람들, 60년대 태어나 ‘프로레슬링’과 ‘왈가닥 루시’와 ‘웃으면 복이와요’를 보고 자란 그들. 그리고 30대가 되어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간 그들에게 지난 시간은 이제 추억이 될 즈음이었다. 20대들이 피시통신과 채팅과 오프라인 만남이라는 영화 속 환경에 호기심과 애정을 보냈다면, 30~40대는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LP와 레코드가게 같은 인물의 주변부를 형성하는 소소한 것에 매혹되었음이 분명하다. 또 왕가위의 <중경삼림>이 ‘California Dreaming’과 마마스 앤 파파스를 부활시켰듯이, <접속>은 ‘A Lover's Concerto’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개봉 첫 주말부터 종로와 신촌 등 젊은이가 모이는 모든 장소는 새러 본의 ‘사랑의 송가’로 뒤덮였고, OST도 충분한 흥행 상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번째 영화가 <접속>이었으니 말이다.
한 때 오디오에 탐닉하고 LP를 수집했던 내가 영화에서 ‘부루의 뜨락’을 보게 된 건 가히 충격이었다. 도대체 장윤현이 누구기에 마니아들만 드나드는 부루의 뜨락, 그것도 2층 오래된 LP코너에 카메라를 들이댔단 말인가. 아무튼 다시 한 번 솟아오르는 LP수집의 욕구를 누르고 영화에 몰입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아주 근사한 클래식애호가로 폼 나게 살았거나 폐인이 되었을 게 뻔하다. 어쩌면 <접속>이 ‘내 인생에 엎질러진 영화’ 중 하나가 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내 청춘을 관통해온 무수한 사건과 사실이 켜켜이 아로새겨진 영화였으니까. 그래서인지 나는 <접속>이 당시 감독의 동년배 세대와 무관치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당대 청춘들의 소외와 소통을 빼어나게 그려냄과 동시에 대중적 화법과 타켓마케팅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386에게는 물리적시간의 경과를 확인시켜주는 한편, 목전에 다가온 사이버세상에서의 분발을 촉구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당대 최고의 배우로 발돋움하던 한석규와 신인 전도연의 젊은 시절은 물론, 찌질한 연기의 최고봉 김태우와 추상미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널리 전파했고, ‘안구건조증’이라는 희귀병을 알게 해준 영화. “만나야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는 명대사를 남겼으며, 피시통신과 속칭 ‘번개’를 세상에 공표한 최초의 영화 <접속>.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1997년 가을의 찬바람이 생각나고,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울려 퍼지던 새러 본의 목소리가 생각나며, 동현의 방의 턴테이블과 냉장고에서 꺼내는 캔 맥주와 담배와, 어둠과 고독의 공기를 가르며 흐르던 The Velvet Underground의 노래 Pale Blue Eyes가 귓가를 맴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