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잘 들지 않는 칼을 사용할 때 손을 베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녹슬거나 이가 빠진 칼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날이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초보자에 칼까지 무디다면 재료를 다루기가 쉽지 않으리란 건 자명하다. 또 무딘 칼을 사용하다 보면 썰린 재료의 단면도 거칠거니와 여러 번 손이 가는 바람에 힘도 두 배로 들기 마련이다. 근자의 독립영화전용관 신규 사업자의 운영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말대로) “오랫동안 준비해온” 게 사실인지 의심스럽다. 딱 아마추어가 무딘 칼을 잡은 형국이란 말이다.
2월 18일 참여연대에서는 독립영화인 155명의 선언과 기자회견이 있었다. 또한 22일에는 자신의 작품 상영을 거부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출신 독립영화감독의 1인 시위도 이어졌다. 이에 대해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 측은 보도 자료를 통해 독립영화인의 움직임을 비판하고 나섰다. 문제는 보도 자료의 내용이 너무 허술하고 아마추어적이라는 데 있다. 이를테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면서 자기 발등을 찍었다는 것. 그러니까 용어의 선택과 사용이 적절치 못했음은 물론이고, 이제껏 펼쳐온 자신들의 주장, 즉 ‘특정 독립영화집단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 온 탓에 소외된 다양한 영화를 선보이는데 앞장서겠다.’는 설립 취지가 무색할 만큼의 현재 독립영화진영에 포획된 자괴감으로 가득했다는 말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갈망해온 다양성영화(인)와 연대해 소외 받아온 영화를 소개하고 상영하면 될 일인 것을, 그 야심찬 포부는 어디가고, 개막전부터 기존 독립영화인들의 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어찌 보면 너무 오래 변경에 머물러있었기에 현실감각이 부족한 탓은 아닌지 모르겠다. 기껏해야 3개 회사가 배급을 담당하는 독립영화계 현실을 모를 리 없고, 더욱이 독립영화의 경우 감독의 권한이 상당하며, 배급사의 입김이 쉬이 미치기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개막전의 파행을 배급사의 ‘담합’과 ‘만행’의 결과로 보도하는 대처방법은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모름지기 일반 상영관이 아닌 전용관 형태의 영화관은 기획프로그램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첫 단추를 기존독립영화로 채우려했다는 것부터가 새로운 사업자의 패착이다. 물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절반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책임으로 돌려야 맞다.

언젠가도 썼듯이 나는 무조건 새로운 전용관 사업자가 잘 못 되길 바라진 않는다. 나름의 노력으로 소외 받은 영화를 상영하면서 영화적으로 재평가 받겠다는 노력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렇게 삐걱대서야, 그 책임으로 자꾸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면 곤란하지 않은가. 답답한 건 이 때문이다. 내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아쉬운 지점이다. 지금의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한국영화산업과 독립영화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정교한 기획능력이다. 이것이 선행되고서야 제대로 된 자체 프로그램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가 주창해온 ‘다양성영화’ ‘소외 받은 독립영화’라는 게 어떤 것인지 만나보고 싶다. 그런 후 (사업주체가 아닌)영화를 온전히 영화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좋으면 호평하고 나쁘면 나쁘다고 말 할 것이다.
질시하고 원망하며 반목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에 앞서 좋은 재료를 잘 손질하는 것이 우선되는 일이다.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일은, 재료에 적합한 칼을 연마해놓는 것이다. 미숙한 요리사가 쥔 무딘 칼에 애먼 독립영화와 감독들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