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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파의 물감으로 채색된 그리스 신화

 

이 영화, 낯설다. 어딘가 모르게 괴상하다. 끝을 잊은 채 파국으로 치닫는 비극적인 스토리는 무심한 코미디로 위장되고, 엄격히 절제된 연출은 화려한 색채로 포장된다. 또한 고지식할 정도로 균등하게 분할된 정직한 화면과 고정된 카메라는, 역으로 배우의 몸짓을 최상으로 돋보이게 하는 테크닉으로 작용한다. 괴짜의 취향과 모순으로 점철된, 뭐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같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두 주인공은 함께 룸바를 추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커플이다. 그러나 룸바 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하고 집에 돌아오던 중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아내는 한 쪽 다리를, 남편은 기억을 잃어버린다.

<룸바> 안에는 모더니즘적 미술 요소가 가득하다. 기호와 상징으로 함축된 미니멀리즘의 미학과 야수주의 색채가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영화다. 야수주의의 대표주자 마티스의 철학에 따르면, 사물의 유일한 진짜 모습은 외면에 드러난 모습과는 다르다. 때문에 이런 핵심적인 모습에 도달하려면 대상의 외형에서 더 이상 삭감할 수 없을 정도로 핵심적인 기호를 찾아내야 하며, 이러한 ‘기호’를 통해 어린이의 그림 같은 단순함을 획득하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였다.

 



<룸바> 역시 연극무대와 같은 간단한 세트와 몇 마디의 대사로 극을 이끌어 간다. 영화의 오프닝은 작중인물이 형광 초록빛 체육관에서 룸바를 연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열정은 중력을 무시한 채 바닥에서 원형으로 회전하는 룸바로 이어진다. 시계바늘처럼 규칙적인 공형을 형성하는 이 장면이 영화가 부리는 가장 화려한 기교이다. 그러나 정작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스크린 밖에서 일어난다. 주인공 부부가 룸바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하는 시퀀스에서 감독은 이들의 화려한 쇼를 구경할 수 없게 문을 닫아버리고, 교통사고의 현장은 간단한 충돌음으로 대체된다. 또한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인, ‘그림자 룸바’ 신은 자유로운 육체와 과거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두 사람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삶을 지속하려는 힘과 이를 끝없이 방해하는 중력간의 긴장을 뛰어넘은, 아름답고 간결한 춤이다.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관객의 마음속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이는 한정된 구성과 몇 개의 선으로 구성된 모더니즘 회화가 관람객들에게 더 많은 사고의 여지를 남기는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또 하나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요소는 찬란하고 선명한 색채의 향연이다. 새파란 바다, 흰 벽 등의 배경 색채와 총천연색으로 무장한 작중인물들의 의상은 야수파의 색채를 연상시킨다. 마르케의 청동조각을 두고 “야수와 같다”고 악평한 안목 없는 비평가에 의해 ‘야수파’란 이름이 붙여진 이들은 마치 색채의 용광로처럼 자극적인 색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마티스의 안과 의사는 그에게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색안경을 끼고 하라고 권할 정도였다. 보색과 원색의 강렬한 나열로 회화 본연의 순수성을 탐구한 이들의 철학을, 화려한 색채의 조합으로 메시지의 강약과 감정의 명암을 조절한 영화 <룸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가장 코믹한 장면은 가장 지독한 비극과 맞닿아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편이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 아내의 의족에 불이 붙어 온 집안을 훌렁 태워먹는 장면 등은 슬랙스틱 코미디로 덧씌워진다. 이것은 자학적 희극인가? 아니면 그리스 신화를 닮은 비극인가? <룸바>는 작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 이후 그 위대한 감독 자크 타티와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간과할 수 없는 삶의 깨달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무리 험난한 일들이 쉼 없이 발생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인생은 지속된다는 진리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불이 켜진 후에도 이들의 룸바는 계속될 것이다.

2010.01.28
조숙현(editor)
퍼블릭아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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