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배창호 감독의 [여행] 프리미어 상영 후 GV 현장보고

 

 

 

 


<여행> 마음의 자리를 찾는 여정


영화 상영 전 배창호 감독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예전에 이 자리에서 제 전작 전을 하면서 다음 작품을 만들면 여기서 제일 먼저 틀어보고 싶다고,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그 말을 지키게 되어서 기쁘다"는 인사를 남겼다. 관객 중에는 봉준호, 전계수, 정윤철 등 많은 젊은 감독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배창호 감독의 신작 <여행>의 프리미어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현장을 간략하게 옮긴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하 김): 이 영화는 세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주도를 삼다도라고 하는데 그 세 가지가 각각의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영화를 구성하면서 어떻게 세편의 에피소드를 구성하셨는지요.

배창호 (이하 배) : 제가 이 작품은 지난 한 해 동안 만들었는데, 3 월에 영화사 측에서 한국의 자연이 소개되는 영화를 원하는 대로, 예산이 크지 않더라도 만들어보는 것을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가뜩이나 자연을 영화 속에 넣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요, 좋다 싫다 따져볼 여지도 없이 그러자고 했죠. 그리고 상의 끝에 제주도로 결정이 되었는데, 전 개인적으로 제주도를 아주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졌고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스토리 구상 없이 다큐멘터리로 갈까 하다가 11월 까지 영화를 끝내야 했기 때문에, 제작사인 아리랑 티브이에 개봉 후에 방송 될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제가 원래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러니까, 이야기가 있는 것이 좋겠다 결정을 했죠. 그리고 헌팅을 하면서 여행이란 제목을 떠올렸고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는 생각을 했죠. 처음에는 세대를 달리해서 20대, 신혼부부, 중년을 생각했는데, 1편을 찍고 나니 세편 다 여행이 되면 외지인이 제주도에 들어와서 벌이는 이야기가 되잖아요. 그런데 여행이란 사람의 삶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거기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제로 2부가 갔죠. 1부와 3부가 감싸는 식으로. 1편은 각본을 쓴 제자들의 체험을 짜내서 만들었고 원래 자전거 여행이 컨셉이었지만, 큰 욕심 없이 산뜻한 제주도의 경관을 보면서 추억도, 싸움도, 이런 과정을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 편은 1 편을 작업하면서 지냈던 숙소가 영화 속에 나오는 레드스카이 펜션이었어요. 워낙 스케줄이 바빴는데 촬영 집합 전에 잠간 동복리라는 마을을 산책하다 해녀가 물질하고 나오는 걸 봤습니다. 그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서 2 편을 찍었고. 1 부 먼저 찍고 3 부는 아내와 같이 썼고, 2 부는 제 딸이 학기말 고사 끝나고 나서 대사를 쥐어짰죠. 제 딸아이가 상상력이 있어서 상황만 던져주면 대사가 술술 나와서 수월했었고, 3 부(의 남편은)는 저와 너무 동일 시 하지 마시고. 마트에서 시식도 안하고, 저도 티브이 보고 비판은 좀 하지만 (웃음). 그러고 보니 돌 여자 바람인데. 변화를 주기 위해 하다 보니 찍힌거고, 그냥 우연의 일치 입니다. 의도는 없었죠.


김 : 시작 전에 스태프들에게 앙금이 있으면 오늘 풀자고 얘기를 하셨는데,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배 : 제가 좀 빨리 (촬영을) 합니다. 질척거리는 걸 싫어하고. 투자사에 기획 넣고 1년 2년 걸릴 것 같다면 차라리 쉬는 것이 좋고. 제가 결혼할 때도 1월 달 만나서 4월에 결혼했는데, 너무 빠른 것 아니냐. 그런데 저는 물리적인 시간이 뭐가 중요하냐 하루를 한 달 만큼 만났으니까 라고 했죠. 영화도 촬영하면서 주어진 시간에 집중해서 시간을 귀하게 쓰기 위해서 스태프들을 쥐어짜다 보니 굉장히 예민해 집니다. 지금은 웃지만 현장에서는 가까이 있으면 데일 정도로 예민해 있죠. 약속한 시간 내에 그걸 해내려고.

 

 

 


관객 1 : 첫 번째 에피소드의 스쿠터여인은 정체가 불명한데,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는 알기로는 윤성호 감독님이 신작에 참여한다고 들었는데 말씀하시길 두 번째 에피소드는 따님이 쓰신 대사라고 하는데요, 그럼 앞으로 윤성호 감독과 신작계획은 있으신지요. 그리고 감독님의 연기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감독님께선 연기자로서 언제쯤 다시 모습을 보여주실 계획인지.

배 : 그 여인은 궁금증을 주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둘이만 가면 밋밋하니까. 우리가 지나치는 여자도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부분이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게 말씀하신 것처럼 3번째 에피소드의 여자일수도 있는 것이고. 사실 2편에서 빵집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3편의 주인공이 만나게 할까했는데, 그건 좀 작위적인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죠. 1부를 보면 해녀하고 주인공 둘이 사진을 찍는데,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여행에서 또 가까이서 삶을 들여다보면 느낄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수수께기의 여자도 가까이서 본다면 이야기가 있겠다는 의도도 있을 수 있겠죠.


윤성호 감독과는 아프리카의 소년 합창단 이야기를 쓰다가 그 작품은 아직 유보 중이고. 두 번째는 원래 신혼 부부 이야기라 윤성호 감독이 지금 한참 신혼이라 부탁했다가 이야기가 바뀌어서 그냥 넘어갔죠. 배우는 윤성호 감독의 십 분짜리는 출연했었는데 투자자가 좋아할까요? (웃음)


관객 2 :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남자는 디지털 카메라를 쓰고 여자는 필름 카메라를 쓰는데, 감성적으론 남자가 필름 카메라, 여자가 디지털 카메라를 쓰는 것이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카메라를 다르게 하신 의미가 궁금하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배우들이 제주도 출신이라 했는데 전문 배우는 아닐 것 같았는데 어떻게 캐스팅을 하셨는지.

배 : 카메라에 대해서는 연출부와 회의를 많이 했는데, 그렇게 나온 의견에 맡겼죠. 사실 그다지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았어요. 사실 이 영화에서 연기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영화에 출연해 본 사람은 김유미 씨(아내) 이외에는 전무했죠. 영화 촬영 전에 김유미 씨에게 3편은 쉬울 것이라고 했지만 촬영 끝나고 숙소에 가면 초죽음인 거에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부 레디고가 뭔지도 모르는 분들이라. 사실 카메라 뒤에 서있는 세계와 연기가자 다른 연기자와 같이 작업하는 세계가 다르죠. 그래서 레디고 할 때는 어떻게 이렇게 지도를 하느라 힘들었다고 했죠. 이 영화에서 몇 분 이외에는 영화 전문 배우가 없었지만. 그 분들에게 집중력과 편안함을 주면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카메라 앞에서 잘 떨지 않죠. 연기를 곧 잘하거든요. 그런데 직설적으로 현실을 카피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걸러서 나오는 것이 창조인데, 2부 배우들도 비전문 배우와 전문 배우를 놓고 어느 쪽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비전문 배우를 선택했죠. 덜 가공된 느낌이 나니까. 2부를 찍기 전에 두 팀으로 캐스팅으로 했는데, 오디션을 보니까 전문 배우들은 감정이 깊고 좋은데 사실감이나 느낌 때문에 비전문 배우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캐스팅은 용병술인데 영화마다 다를 수밖에 없죠. 항상 어떤게 좋다는게 아니라.

 

 



 


관객 3 :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엄마가 다시 수원에 있다가 제주도로 돌아오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배 : 엄마 캐릭터는 5~ 6년전 비금도 민박집에 잠간 머물렀었는데 그 집 며느리, 집나간 며느리 사연을 접목했습니다. 섬이라는 것이 외부에서 볼 때는 아늑하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은 떠나고 싶고 그렇죠. 그렇게 떠나지만 귀소 본능 같은 것이 있죠, 그래서 돌아올 수밖에 없고.


관객 4 :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긴 머리 소녀 노래를 부르는데 타원형의 거울을 보는데 사진을 포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선 에피소드들에서 사진과 메모가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데, 그런 장면을 넣은 의도는.

배 : 이 영화에서 제가 사진 장면을 좋아하는데, 말 하고 싶었던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영화배우가 되고 연기를 하고 삶의 모든 것이 영화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어떻게 가공 하는가 이런 문제인데. 이번 영화는 사진의 느낌들이 영화의 성격에 잘 맞을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넣었습니다. 3부의 여주인공의 사진은 가공이 아니라 실제로 김유미 씨의 사진이잖아요. 자신의 삶을, 한때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느낌으로 넣었고. 아주 어린 여고생 시절의 모습과 마지막에 성인이 된 사진과의 대비점이 좋게 느껴졌어요. 삶을 아주 드라마틱하게 끌어내지 않더라도 있는 것 속에서 잘 끄집어내면 정서적으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김 : 봉준호 감독 오셨는데 마이크를 드리면 힘들어 하실까요(웃음).

봉 :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저는 여중생 연기한 친구 얼굴이 인상적이고 좋았습니다. 아마도 아까 구체적으로 말씀 안 하셨지만, 물론 학생이니까 비직업 배우니까. 그냥 여중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캐스팅은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배 : 그 여중생은 제주도 연기학원에 몇 년 동안 다닌 친구인데, 이렇게 연기 경험은 처음이고. 할머니는 민속극을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하시는 민속극 배우죠. 그 여중생이 (지은인데) 잘 때도 배에 대고 자더라고 스태프들이 말해주었습니다. 열심이라고. 2-3시 까지 대본 연습하고 배에 올려놓고 자더라고.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저는 크게 연출을 하지 않고 판단과 선택만 했죠. 디지털은 이번이 처음 작업인데 장소 이동이 많고 찍을 것도 많아서, 연기만 깊게 파기 힘들어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디지털이기 때문에 빠르게 찍을 수 있었습니다.


김 : 저는 이 영화가 참 젊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이 만든 느낌이 들 정도로 색다른, 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업하신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서도 상반기 개봉 예정인데 주변에 많이 이 영화를 알려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배 : 《씨네21》 인터뷰를 하면서 3년 동안 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고 난 후 지금까지 작업했던 내 연출을 뒤돌아 봤는데, 내가 좀 버릴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걸 버리는 과정이었는데, 아직 멀구나. 이번에 이런 소재를 만나면서 제가 보는 시선보다는 인물이 느끼는 대로 소박하고 겸손하게 가자. <황진이> 이후의 작업이 좀 화려한 것들이었죠. 이번엔 그 전 보다 좀 더 버렸는데, 사실 동시대의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요즘엔 인간의 열등감, 어둡고 비겁한 영화들도 많이 만들어지는데, 아직 인간이 희망이 있는데, 이렇게 영화를 찍어서 낡았다고 할까. 그런 걱정도 있었죠, 그렇지만 아직 건강한 구석이 있다고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할 수 있었고, 고집을 많이 버렸습니다. 지금은 좀 더 열어두려고 노력하는데 제주도의 이름 없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마음을 열고 느끼고 하다 보니, 좀 더 소박한, 살아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황진이> 때부터 밋밋하지만 생수 같은 영화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 영화들을 관객들이 좋다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영화들이 양념을 치고 자극적이고 하지만 탈이 나면 결국 찾는 것은 물이죠. 제주도 삼다수처럼. 그런 영화가 되길 바랬고. 다들 좋아하셨다면 좋겠죠. 앞으로도 자극적이지 않은 우리 몸에도 좋고 시원한, 그리고 물리지 않는. 그런 영화가 더 나오기를 바랍니다.

 

정리: 양석중

사진: 강연하

 

2010.01.24
양석중(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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