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후, 신사동 가로수길 끄트머리에 위치한 ‘허리우드현상소’에서는 신동일 감독의 단편영화 기술시사가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을 맡고, 5명의 감독이 만든 작품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완성하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업자인, 신동일의 완성본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리다. 주연인 심이영과 김태훈을 비롯해 문희경 등, 출연배우와 스태프가 총출동했고, 국가인권위원회 담당자들까지 배석한 가운데 행사는 진행되었다.

<진실을 위하여 herstroy taking>로 붙여진 제목답게 신동일은 ‘정보 인권’을 소재로, 28분 남짓의 짧은 영화에 제 솜씨를 발휘하면서도 할 말을 다하고 있었다. 산부인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산모와 병원 사이의 분쟁과 갈등을 주된 이야기로 끌어가는 영화에서, 신동일은 공공 감시체계에 무차별로 노출된 우리의 모습을 그리는 한편, 정보사회가 어떤 방법으로 인권을 발가벗기고 무한대로 유통시키면서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매끈한 영상과 군더더기 없는 내러티브가 눈에 띄었는데, 이런 와중에도 특유의 사회비판이 소품과 배우의 입을 통해 흘러나올 때, 음식을 먹는 남녀를 잡아낸 투-숏이 무심한 듯 건조한 거리를 유지할 때, 이것이 ‘신동일 영화’임을 확인을 할 수 있었다.
필름으로 상영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기술시사라고 할 순 없지만, 참석자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읽으면서 나 또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니, 영화는 더 없이 좋았고 화면의 밀도감은 유려하고 풍성했으며, 메시지는 짧고 강렬했다. 그래서 속으로 ‘심지어 이젠 신동일의 영화가 예쁘기까지 하구나’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랬다.
사실 오래전 시나리오를 읽었을 당시 생각은 이랬다. ‘인권’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가 ‘신동일이라는 스펙트럼’을 통과한다면, 아마도 날것의 건조함과 둔탁함을 동시에 품게 될 것이라고. 또 그로인한 직설화법은 지지자들을 더 많이 걱정시킬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나의 우려가 기우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신동의 단편은 (…) ‘예뻤다.’
전체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의 어디가 예쁘냐고 반박할 사람도 있겠지만, 상황을 풀어가는 인물들의 관계설정ㅡ신동일의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상황과 문제를 풀기 위해, 사람이 연대하고 집단이 움직인다ㅡ의 변화가 예뻤고 배우가 품고 있는 재능을 한 순간이나마 보여주려는 연출시도가 예뻤다. 예컨대,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의 곤경에 빠진 부부가 집으로 돌아와 햇살을 배경으로 미역국을 먹는ㅡ바로! 신동일의 장기인 ‘음식 먹는’ㅡ장면에서의 현실감이 그랬는데, 즉, “미역국 맛있네.” “나도 다시 일자리 알아 볼 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찬밥 더운밥 가리지 말고 눈 좀 낮춰봐” 같은 대사와 연기를 통해 판타지 같은 공간으로부터 (인물들을)현실세계로 연착륙시킨다는 것. <파주>에서 옹골찬 연기를 보여준 심이영과 <약탈자들>로 얼굴을 알린 김태훈의 연기도 만족스러웠고, 병원장 역을 맡은 문희경의 시니컬한 표정과 목소리는 캐스팅의 성과로 봐도 좋으리라.
자기 작업에 자신감을 갖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이번 시사가 의미 있는 진짜 이유는, 신동일에게서 여유로움을 발견했다는 데 있다. 상영 전 인사에서 “10년 만에 하는 단편”이라고 입을 뗀 신동일은, 이전의 기자시사회와는 달리 제스처까지 섞어가면서 영화를 소개하는 여유로움을 보여주었다. 낭트에서 얻은 성과 때문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이전 어떤 자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신동일의 느긋하고 푸근한 표정은 인상적이었다는 것. 어쩌면 그는 이제야 자기영화에 확신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갈 길이 어디고 한국사회에서 신동일 영화의 좌표가 어디쯤인지를 확인했으며, 이로써 영화를 통한 제 목소리 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은 아닐까 싶다.
비록 단편영화지만 장면장면마다 지난 10년간의 목소리가 틈을 비집고 튀어나올 때, 그럼에도 직설화법을 절제하거나 짧은 폭소로 마무리하면서 관람자를 배려할 때, 그리하여 우리들 스스로가 인권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하며 무정할 정도로 그것을 방치해왔는지를 알게 될 때, 신동일의 단편 <진실을 위하여>는 그 무겁디무거운 진실의 무게를 가리키는 꽤나 정확한 눈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