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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데샤넬, 그 여자 이상하다

 


‘요정 윌 페럴’의 부담스런 깜찍함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건 갑자기 등장해 스크린을 가득 채운 그녀의 영롱한 눈망울이었다. 커다랗고 푸른 눈에 눈부신 미소를 지닌 이 금발 여인은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엘프녀’였다. 아니, 이렇게 요정스러운 배우가 다 있나!

그렇게 <엘프>에서 조이 데샤넬 Zooey Deschanel 이라는 배우가 처음 눈에 박혔다. 자신이 엘프인 줄 알고 살던 남자의 인간성 되찾기를 그린 영화에서 엘프 코스프레를 하고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용 선물 포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는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이 요정 뺨치는 외모를 지녔지만, 실은 입에 풀칠하고 사는 게 영 피곤한 뉴요커였다. 첫 등장 때 한 가득 마법 가루를 뿌려 놓고는 이내 시니컬하고 엉뚱하게 ‘깨는’ 면모를 과시한 그녀. 심지어 윌 페럴과 로맨스를 펼치기까지 한 그녀. 이때부터 ‘조이 데샤넬’이라는 낯선 이름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니 데샤넬을 처음 접한 건 <올모스트 페이머스>였다. 주인공 소년 윌리암의 누나 애니타로 출연한 그녀는 언제 이 영화에 나왔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잠깐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는 윌리암이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달고 쓴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하기까지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한 인물이다. 히피 정신을 온 몸으로 실천하던 애니타는 방에 처박혀 음악만 듣고 있는 남동생에게 모험을 하라고, 좀 쿨하게 살아보라고 충고한다. 어수룩한 15살 소년이 그루피를 몰고 다니는 인기 록 밴드 투어에 동참해 <롤링 스톤>에 기사를 쓰고, 첫 사랑의 짜릿함도 맛보게 한다.

그녀의 달콤한 외모는 꽃미남과 커플을 이룬 예쁘장한 로맨스 영화의 히로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조이 데샤넬은 달달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얘가 걘가’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스타일을 바꾸며 작품 속에 녹아들면서 스위트한 외모를 배반하는 ‘이상한 여자’로, 주연이기보단 조연으로, 주류보단 비주류에 가까운 영화 위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기상천외한 SF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도 데샤넬은 이상한 여자 트릴리언이 된다. 사랑스런 외모로 주인공 아서의 마음을 빼앗더니 느닷없이 “마다가스카로 떠나자”고 말한 그녀는 소심한 아서가 망설이자 뒤도 안 돌아보고 똘아이 우주인 자포드에게 이끌려 은하로 날아간다. <달콤한 백수와 사랑 만들기>에선 또 어떤가. 사라 제시카 파커와 매튜 맥커너히의 그닥 인상적이지 않은 이 로맨틱 코미디에서 데샤넬은 역시나 귀여운 외모의 괴짜 여인으로 등장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론 괴상하기로 치면 드라마 <위즈>가 최고봉이다. 어느 하나 막장 아닌 캐릭터 없는 <위즈>지만, 시즌2 후반부와 시즌3 초반에 이르는 4개의 에피소드에 투입된 데샤넬은 앤디의 옛애인 캣으로 분해 ‘제대로 미친 여자’의 면모를 온 몸 던져 표현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

모험과 판타지는 이상한 나라에서 튀어 나온 듯한 배우 조이 데샤넬이 선택한 영화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정서다. 그 중에서 TV 드라마 <틴맨>은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다. ‘사이버펑크 버전 <오즈의 마법사>’인 <틴맨>에서 DG(도로시 게일)가 된 데샤넬은 가죽점퍼에 바지를 입은 모험심 가득한 소녀로서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판타지 아동극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나 이상 현상 재난극 <해프닝>에서도 데샤넬의 범상치 않은 기운은 영화의 일부분으로서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짐 캐리라는 대스타의 그늘에 가려 ‘주인공의 어여쁜 파트너’ 쯤으로 적당히 소비될법한 <예스맨>에서도 조이 데샤넬은 예의 이상한 기운을 잘 살려내 존재감을 확실히 심어 넣었다. 네댓 명의 ‘오덕후’ 관객을 앞에 두고 기이한 퍼포먼스를 동반한 괴노래를 매우 진지하게 부르는 장면은 과하지 않게 괴짜스러움을 표현하는 조이 데샤넬표 연기의 정점이다. 달리면서 사진 찍는 걸 당당한 취미 생활로 여기는, 인생이란 놀이터에서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신나게 놀 줄 아는 여자를 조이 데샤넬처럼 그럴만하게 표현할 배우는 드물다.

 

 



1월 21일 개봉될 신작 <500일의 썸머>에서 데샤넬은 또 한 번 엉뚱한 여자로 분했다. 지루하게 살고 있던 남자 톰 앞에 나타난 한여름 햇살 같은 여자 썸머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지만 알 수 없는 속마음으로 톰을 애타게 한다. 링고 스타를 좋아하고 시드와 낸시 중에서 자신이 시드라고 말하는 썸머는 연애에 있어서 누구와도 같길 원하지 않으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운명의 상대를 믿는다. 이것이 자기 인생 최고의 로맨스임을 찰떡 같이 믿고 있던 톰에게 썸머는 ‘우린 그냥 친구일 뿐’이라고 못 박는다. 어떻게 보면 얄미운 ‘어장관리녀’인 썸머를 조이 데샤넬은 미스터리하고 아련한 인물로 느껴지게 만든다.

10여 년간의 배우 경력에 4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조이 데샤넬. 하지만 그의 출연작을 한국에서 다양하게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조이 데샤넬이란 배우의 비슷한 이미지만을 공유해왔다. 따라서 한국 관객에게 그는 코미디 영화의 남자 주인공을 보조하는 예쁘고 엉뚱한 여자로 각인될 우려가 있다. 미국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연기력을 호평 받은 <올 더 리얼 걸스>를 비롯해 <윈터 패싱> <플레이크> <자이갠틱> 등 조이 데샤넬의 보다 깊이 있고 색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개봉하지 못했다는 게 안타깝다.

듀엣 그룹 ‘She & Him’의 실력파 싱어 송 라이터이기도 한 조이 데샤넬은 단순한 연기자이기보다는 다재다능한 아티스트이기를 원하는 것 같다. <엘프>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등에 이어 <500일의 썸머>에서도 그는 노래 실력을 뽐내며 뮤지션이라는 정체성을 내비쳤다. 올드 뮤직과 빈티지 의상을 좋아하고 한 군데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조이 데샤넬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히피이며, 오즈를 여행하는 도로시이자 이상한 나리의 앨리스다. 촬영감독인 아버지와 배우인 엄마, 언니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특유의 의연함과 여유로움으로 크고 작은 영화에서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는 데샤넬의 신작은 그래서 늘 궁금하다. 어떤 영화에서 어떤 비중으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조이 데샤넬은 언제나 이상하게 빛날 테니까.

 

 

2010.01.15
정미래(editor)
film-o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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