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전우치] 비평

 

1.
최동훈의 신작 <전우치>는 시종일관 배우 강동원이 시치미 뚝 떼고 흉내를 내는 영화이다. 강동원은 영화의 주인공이라기보다 게임에서의 일종의 아바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가 상황에 따라 역할을 바꿔 보이는 것은 단순히 도술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존재 증명이다. 영화는 전혀 연결성이 없는 공간을 촉지적으로 연결 지으며 마치 게임의 공간을 형상화한다. 전우치에게 이 연결성 없는 공간을 종횡무진 뛰어다녀야만 하는 의무감이 주어지고, 그는 변신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이 흐름 속에 맡길 수 없다. 변신은 그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다. 그의 캐릭터 하나하나는 임시방책이다. 그것은 완벽이 아닌 보다 그럴듯함을 추구한다. 진짜가 아니라 진짜같이 보이는 것이 목표이다. 전우치는 하늘에서, 혹은 땅에서, 어느 이차적 공간에서 이보다 더 비현실적일 수 없게 등장하면서 상하좌우의 위치성과 중력이라는 물리력에 지배 받지 않는다. 사라짐 또한 그러하다. 이것은 화면 프레임 바깥, 그 영화 바깥의 또 다른 현실의 공간으로부터 단절된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전우치의 출몰과 그의 무술은 게임의 스텝을 밟아가는 것처럼 거의 의무적으로,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이것은 서사를 인과적으로 만들어가지 못한다. 그가 요괴를 퇴치하기 위해, 스승의 원수를 갚기 위해, 청동검과 피리 반쪽을 찾기 위해 시공을 헤매고 있다는 이야기는 게임의 인트로 같은 설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온통 레이어된 공간을 난이도 조절로 뛰어넘는 발 없는 캐릭터들의 신기적 무술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란 그들이 fail out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에겐 그 공간의 구조를, 그 출입구를, 그 공간들 간의 연결/단절성을 사고할 여유나 그럴 필요성이 없다. 공간이 더욱 스펙터클 할수록 그들에겐 유리할 뿐이다. 숨어들 구조가 확보되고 가짜로 들통 나지 않을 가능성을 보다 높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출입이 자유로워진다.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대도시의 스펙터클 한 구조는 이들의 변신, 물리적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일에 보다 유용한 것이다.

 

 


이처럼 전우치는 조선시대로부터 온 전설적인 인물로 불가피하게 현재 서울에 도착한 자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판타지성을 위해 고전의 옷을 빌려 입은 쪽에 가깝다. 문화재를 거리의 풍경으로서 창안해가는 디자인 도시인 서울에서 볼 때 조선시대를 거의 실제처럼 재현한 CG효과야 말로 완벽한 판타지다. 이는 더욱더 진짜 같은 가짜를 추구한다. 현실성을 부여할수록 현실이 사라지는 세계이다. 보다 조선과 같을수록 실제의 조선으로부터 멀어진다. 어쩌면 그 역일 수도 있다. 시대와 멀어질수록 그것의 재현에 대한 욕구가 왕성해진다. 조선왕조 사극과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작들이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서 유행처럼 번져가는 현재의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전우치>에서 조선시대와 2009년 현재의 중간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은 배우 염정아가 등장하는 1930년대 경성을 무대로 한 영화 촬영 세트장이다. 이 세트장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가짜'임을 대놓고 증명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우리 눈엔 마치 진짜 같은 곳을 뚫고 밟고 치고 다니며 도술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짜임이 여지없이 보이는 위태로운 세트장을 전우치가 다른 공간들과 다름없이 뚫고 밟고 칠 때 이곳은 여느 공간과는 달리 초라하게 무너지며 그것의 실상을 드러낸다. 세트장과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전우치이다. 우리가 관객이라면 진짜를 뚫을 때 놀라지만 가짜를 뚫을 때 웃는다. 또 만일 우리가 전우치를 조종하는 게이머라면 이 지점에서 무척 아쉽다. 여기에선 다른 전략을 사용했어야 했는데, 긴 기럭지의 전우치가 갑자기 작아지며 에너지 다운된 느낌마저 든다. 관객과 게이머로 굳이 나눌 필요도 없이 우리가 이해할 대상은 전우치란 캐릭터가 아니라 공간이라는 구조이다. 전우치는 이미 공간의 변화에 발맞출 수 있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공간지각력, 진짜/가짜에 대한 판별 및 적에 대한 감지 능력, 이에 따른 전략/전술들일 것이다.


2.
전우치가 조선시대에 하늘에서 구름 타고 내려와 옥황상제 흉내를 내더니 마패를 꺼내어 암행어사 행세를 한다. 전우치는 타락한 왕과 고위관료들을 응징한다기보다 자신 앞에서 상대적으로 군림하는, 그들이 자신의 노릇에 속아 넘어가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즐거워한다. 그는 확실히 홍길동과 같은 사회정치적 인물보다 유희적이고 쾌락적인 행태를 좇는 현대적 악동에 가까워 보인다. 이 악동은 앞서 언급했듯이 현실적인 외관을 갖춘 한 비 현실적 인물이면서 정치적인 판타지성을 입은 탈 정치적인 인물에 가깝다. 그는 탈 이념화되고 탈정치화 된, 이데올로기의 실종 시대로서의 현대적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그는 사라진 정치 이념을 조롱하며 풍자하고 희화화시킨 인물에 가깝다. 전우치가 시종일관 보여주는 태도를 보면 여지없이 그러한데,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마치 양반이나 고위 관료들의 걸음을 흉내 내듯 뒷짐을 지고 천천히 회유하는 듯한 여유를 보인다. 이것은 그가 도사라는 정체성으로부터 기인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것이 조선시대로부터 현재의 서울에 도착할 때 그 양상은 사뭇 달라짐을 느낀다. 500년 전에야 여지없이 지배계층을 풍자하는 형상화처럼 보이지만 현재에선 보다 정신적인 문제와 연결이 된다. 이 뒷짐 지고 구경하는 '태도'는 탈 이념화되고 탈정치화 된 현재의 도시 위에서 마치 19세기 파리에서 새롭게 등장한 도시의 만보자의 그것을 떠올리게 된다. 전우치에게 낯설도록 설정된 이 도시는 그야말로 진기한 구경거리다.

 

2009년 서울에서 전우치가 검찰청과 청계천 복원 현장과 재개발 직전의 쓰러져가는 답십리 골목길을 드나드는 것은 그것에 내재된 정치적인 전략성과는 관련이 없다. 전우치가 박물관 그림으로부터 소생되어 서울 한복판에 급파되는 설정자체가 관객에겐 당혹스러운 일일 텐데, 전우치는 난감해하기는커녕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도시 속에 숨어든 정치권력의 욕망을 품은 요괴들을 찾아내어 물리쳐야 할 텐데 도시의 지나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네온사인과 전광판에 현혹되고 거리의 유리창 안쪽에 진열된 상품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전우치의 모습은 현대인의 자화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전우치가 왕의 성찬을 엎으며 훼방을 놓던 행위와 검찰청에 무방비로 쳐들어가 증거품을 확보하는 모습은 지배 계급의 질서에 대한 전복적인 행위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지배 계급의 권위에 대한 무시나 부정 정도일 텐데 이것은 공적인 질서의 재편 의지보단 사적인 명예욕(최고의 도사가 되기 위해 청동검을 소유하려는 것)과 더 관련이 있다. 그의 과격한 행동은 개인의 욕망을 가로막는 권위적 행태에 대한 반동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탈정치화 된 시위의 변화된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전우치의 캐릭터는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역사의 현장을 스펙터클 하게 체험하도록 만드는 전략적 광장에 흡수된 군중과 구분되지 않는다. 광화문 광장에 서있는 이순신과 그 앞에 전시된 백남준의 비디오물을 통해 시연되는 거북선과 그곳으로부터 도심 아래를 가로지르는 복원된 청계천의 강물과 인공 폭포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문화재의 재현 현장이다. 그것은 이 정권을 역사적으로 정당화시키려는 것임과 동시에 그 전통 위에 권력을 세우려는 야심이다. 전우치 역시 박물관 그림에서 튀어나와 서울 한복판을 누빈다. 전우치는 역사나 문화재의 일부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묘기를 부려 현대에 걸맞은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전우치는 탈 정치화된 서울의 도심 위에서 새롭게 디자인된다. 그는 요괴를 잡기 위해 도시로 나왔지만 보들레르가 말한 흐름에 몸을 맡긴 환희의 체험자에 가깝다.

 

영화의 엔딩에서 전우치가 이른 곳은 복원된 청계천의 강물이 모여든 혹은 4대 강이 만나는 지점의 바다였을까. 그러나 영화에서 이 바다는 무국적인 공간처럼 묘사된다. 이 비현실적인 바다 속으로 전우치와 일당들이 즐겁게 걸어 들어갈 때 급작스럽게도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이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바다의 이미지가 상기된다. 차마 중립국으로 가지 못한 이데올로기적 고뇌에 찬 실존의 선택으로서의 바다. 그 속으로 비실존적 인물들이 걸어 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전우치>는 이 근대적인 아이러니를 실존적 차원에서 끌어내 현대의 풍경 속에서 풍자한 영화다.

 

2010.01.03
김시원(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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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1)
  • 김지한
  • 2010-01-04 17:47:30

WOW... 제가 더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