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놓고 있다가 오프라인 마감이 코앞에 닥쳤음을 감지했다. 나야 에디토리얼 하나 완성하면 끝이지만 이마저도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게 아니다. 잡지의 성격과 의도를 한 눈에 표현해야 하는데다가 단숨에 읽힐 수 있도록 써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의 일치로 안제이 바이다의 1982년 작 <당통>을 보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대적 공기를 잘 잡아냄과 동시에 혁명법정과 국민공회의 딜레마까지 세밀하게 그려낸 이 영화에서 중심은 당통 Danton이 아닌 로베스피에르 Robespierre 다. 그러니까 자신의 선택에 불안해하면서도, 당통의 처형이 불러올 사회적 파장과 혁명정부의 필연적 실패를 알면서도 전체주의를 혁명정신ㅡ시민 역시 뜻을 같이 할 것이라 믿었다ㅡ으로 호도하는데 힘을 실어준 장본인이 로베스피에르였고, 결국 당통의 처형은 그의 고뇌에 찬 선택의 결과로 묘사된다는 것. 이미 역사에 기술되어있듯이 일단의 결과는 로베스피에르 파의 승리로 끝을 맺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보여준 두 혁명동지의 태도이다. 즉 당통이 낙관적 선동가 기질대로 다소 허술하게 대응하다가 불의의 일격을 맞는 반면, 신경질적인 염세주의자 로베스피에르는 끊임없이 회의를 품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상대를 제압한다는 것. 안제이 바이다의 빼어난 미장센이 도드라지는 장면 역시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한다.
가령, 당통 일파의 처형을 시민의 묵인 하에 관철시키려는 국민공회 장면을 보면 단상에 선 단신의 로베스피에르가 발뒤꿈치를 들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흔들림 없는 눈과 입술 위에 의지와 위엄을 더하는 그의 몸짓은 연단에 가려져있지만, 안제이 바이다는 이 남자의 발뒤꿈치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면서 로베스피에르의 절박한 심정을 전달하고 있다. 장엄한 역사의 관전자에게 고작 발뒤꿈치나 보여주었다고? 그렇지가 않다. 요즘 세태로 보자면 ‘루저 중의 루저’로 불리고도 남을 만한 작은 키의 소유자였음에도 시종 보무당당하게 의원들을 리드했던 그조차, 역사의 현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까치발을 딛는 우스꽝스런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은 어딘가 시사적이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적어도 영화 속) 당통은 지나치게 시민을 믿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순진한 이상주의자에 불과했던 것일까. 국민공회파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고, 어쩌면 그것은 당통의 지나친 이상주의로부터 연유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발뒤꿈치를 들며 사자후를 토했고, 당통이 처형되던 날 ‘프랑스 인권선언’을 암송하는 어린 처남을 창백하고 겁에 질린 얼굴로 응시하던 엔딩 신의 로베스피에르가 한 없이 측은해보이더란 얘기. 일찌감치 시대와 시민의 요구를 조절하고 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고도 실패자로 기록된 로베스피에르지만, 여전히 당통의 짝패로 호명되는 것은 발뒤꿈치를 들만큼의 열정과 번민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학창시절 앞자리에 앉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들어가며 키를 높이려 안간힘쓰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물며 학생들의 자리다툼도 이러할 진대 근대사를 뒤흔든 역사의 현장에서 (실제로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시종 멋쩍은 웃음이나 날리면서 시민의 동참을 확신하던 당통의 안일함이라니. 비록 ‘옛날 옛적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이고 근대 프랑스의 시민정신을 구축한 위대한 혁명의 총아였다고는 해도 나는 당통의 처신이 못내 마뜩치 않다. 혁명은 결코 낭만이 아님을, “남자가 권리를 가지는 건 그걸 장악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역사가 알려주고 있던가. 그러므로 까치발이라도 드는 성의와 노력을 보태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이왕이면 발뒤꿈치를 들지 않아도 되는 그대이기를. 이도저도 귀찮으면 키높이 구두를 신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