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방심한 틈을 표적하여 흡혈하는 것들은 거머리, 모기, 빈대, 가끔씩은 벼룩도 있는데 뱀파이어는 하필이면 박쥐일까. 어쨌든 어둠의 자식인 박쥐가 관찰하기에 자기에게 스스로 피빨려 죽겠다고 달려드는 표적은 사람 밖에는 없거든. 그런데 거룩한 순교니 계획적인 자살이니 말들이 많지만, 피 뽑히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건 그냥 장난일 뿐이었어. 사랑이 뭐다, 죽음이 뭐다, 박쥐에 뱀파이어를 빗대어 이야기하는 그같은 내러티브 자체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이려니. 아, 물론 모든 관찰자의 입장이란 자신이 순간적으로 정지해 있다는 착각 속에서 표적의 운동 상태를 판가름하겠지만.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빛의 속도를 막아내지 못한다. 다만 단 한가지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빛, 그 자체일 뿐. 빛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빛 아래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은 그 빛이 주는 에너지를 먹지 않으면 안돼. 싫어도 군말 말고 감사하게 먹어야 되는 것이야. 빛이란 살아있는 것의 근원이라고 할 것이며, 생물체 가운데 빛을 역행하여 암행의 재능을 즐기는 공통점이 사람과 뱀파이어를 서로 사랑하게 만들지. 사람이거나 뱀파이어이거나 생존을 위한 행위를 결정하는 기준은 딱 두 가지.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먹잇감을 어떻게 구할 것이냐에 관한.

뱀파이어(vampire)는 밤이 되면 살아 움직이면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 그런데 뱀파이어에게 물렸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존재가 있어.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아도 쉽게 죽지 않는 치유의 성흔 같은 것이 있어. 흡혈귀, 혹은 바이러스의 스타일에는 희생자가 제 발로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있고, 말뚝 같은 것으로 직접 자기 몸에 구멍을 찍어 강제로 그 피를 빨아 먹게 만드는 것도 있고, 평범한 여러 숙주를 마음 편히 전전하던가, 가장 우량하고 건강한 숙주에 집착하여 기생하거나, 아무 숙주나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흡혈하거나, 힘없는 것, 병든 것, 죽은 것으로부터만 피를 뽑아내는 것도 있다.
생을 뒤돌아보아, 죽을 힘을 다하여 아무에게나 올라타고 매달리면서까지, 우리가 우리의 타들어가는 메마른 목숨을 향하여 가장 열정적으로 진지해졌던 순간을 기억해보자. 그것은 장난이었다. 누구에게나 생존이라는 이유로 인해 맛보기를 놓쳐버린 장난질이 하나쯤은 있는데, 우리가 당장 죽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이지 간단해. 그 짓 한번 못해보고 죽는 것이 아쉬운 거라. 현실에서는 감히 제 맛을 넘볼 수도 없던 쾌감이 여러 개 있는데, 우리가 이다지도 허무하게 죽어 가는 이유가, 살면서 그것들을 단 한번도 제대로 해볼 수 없었기 때문임을 깨닫는 것이 억울한 거라. 인간만이 영묘하게 누릴 수 있는 장난기에 대하여, 수백 권의 뭐라고 떠들어 대는 철학개론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신부님들과 과부님들이,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것을, 흡혈귀에 물어뜯기고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고통을 겪음으로 대체 쾌감하시는 것이다. 눈뜬 장님이 떠오르는 수평선의 핏빛을 따라잡겠다고 풀이 죽은 눈알을 마구 돌려대는 환상, 그런 장난기 가득한 치욕적 순간만이 뱀파이어, 혹은 뱀파이어 같은 것들에게 허락된 사랑이다. 이것은 사랑이 장난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장난이 바로 사랑이었다는, 목구멍이 떨스티하게 바짝바짝 졸아붙어가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자들은 평생 따라잡을 수 없을 광기의 속도전. 이것은 물질이 움직여 가는 진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생물체의 방식, 하나의 덩어리가 날아가 다른 물체에 쾅 부딪쳐 반사되거나 흡수되거나 튀어나오는 현상.

살이 썩어나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왜 그들은 그런 상태에 감염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을까. 왜 그들은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었던가. 한번도 그걸,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처지된 과부들의 저주와, 순교가 자살인지 자살이 순교인지 분간조차 못하는 사지 병신 노총각들의 해묵은 권태와 공상은, 죽음의 끝은 포기할 수 있어도, 모두가 자기를 피하고 제 마음껏 몸을 놀릴 수 없는 그런 치욕의 상태에 노출되는 순간만큼은 끝내 포기하지 못해. 몹쓸 바이러스를 옮기고 게걸스럽게 흡혈을 하고, 드디어 원하는 것을 한껏 들이킨 뒤 현격하게 육신을 지배하는 첫경험의, 하아, 그 미칠 듯이 초조하고 불안한 공황.‘난 처녀나 다름없어요','난 옳은 일을 하러 거기 간거에요'.
두 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떤 짐도 질 수 없게 하소서.
혈관에 알콜을 주입하는 정도가 아니야. 입술에 피를 적시는 정도가 아니야. 몸에 좋은 물을 그렇게 탐욕스럽게 마시지는 못하지. 고해소에 무릎이 닿기도 전에 모든 것을 꿰뚤어본다는 신부. 해볼 것은 다 해봤으면서 마치 모든 것을 처음 해보는 것처럼 온갖 첫 동작을 연출하는 과부. 화약고 곁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심정. 지나가는 강아지만 봐도 뒤를 들이대고 싶은 사랑. 하고 싶을 때마다 허벅지를 때리고 찌르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불만의 드높은 정신. 남의 마음에 쏙 드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남이 나를 욕망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이 심심해서 벌레 같은 것들을 똑똑 죽이듯이, 그리하여 뱀파이어는 반드시 죄악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장난은 어디까지나 장난일 뿐이니까.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다만 불쌍한 노총각의 피비린내 나는 착각은, 자기 물건의 어수룩한 빈대 붙음이 과부의 일생을 피범벅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자기가 뭐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과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자기는 옳은 일을 하러 간 것뿐인데!)? 같이 오래 오래 잘 살고 싶었는데 지옥에서 만나자느니, 자기의 구원은 실패했다는 둥 죽음의 끝으로 달려가는 순간까지 함부로 고해성사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됐으니까, 신부님은 그냥 가만히 계세요. 기도만 하세요." 드디어, 이것이 과부의 저주다.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우리는 자기가 경멸하는 자보다 자기가 결코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부득불 증명하기 위해서 기도하는가? 빛을 피하지 않기 위해서는 빛을 피할 수 없어야 한다. 빛을 마주하려면 무한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의 무한대는 빛, 그 자체이다. 빛이 되지 않는 한 빛을 피할 수 없다. 뱀파이어는 빛이 될 수도 없고 빛을 피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죽으려하는 자들은 이것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 순교이든 자살이든, 죽는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그렇게 쉽게 순순히 끝나는 인연과 삶은 없다는 것을.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삶은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해볼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태어난 순간조차 장난이었는데? 장난으로라도,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하는 척이라도 시늉을 해야, 그나마 그분이 죽음을 허하시지 않겠는가. 너무 부끄러워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으려고 냅다 뛰어드는 것이 순교와 자살이 아닐까. 그러나 그들에게도, 빛이 무서워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을 신발이라도 가지런히 벗어 두어 알리고 싶은, 어떤 발버둥치던 삶이 있었을 것이다. 신발이 없었다면, 사람의 어깨에 박쥐처럼 아주 가벼운 무게의 날개가 돋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뱀파이어는 죽음을 끝으로 신발을 신어 본다. 그리고 그것은 그냥 장난일 뿐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