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잡아 끄는 그 비주얼, 그 폭력과의 첫 만남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린 시절 영화를 그렇게 많이 접하지는 않았다. 워낙 영화라는 매체에 너무 뒤늦게 눈을 뜬 것도 하나의 이유로 꼽을 수 있겠으나, 영화를 보러 갈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정확하겠다. 분명 이것은 하나의 인생 속 아쉬움으로 기록될 일이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이게 어떤 장점으로도 작용한 것 같다. 그 와중에 극장에서 볼 기회가 생긴 영화들은 머릿속에 각인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영화를 본 경험에 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영상 자체의 모습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는 거다. 혹자는 이것이 하나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어찌하오리까, 이게 사실이니.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바로 이 기억 속에 각인된 공식적인 최초의 영화였다.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밝혀 둘 것이 있다면 실질적으로 본 최초의 영화는 이 영화가 아니다. 이정국 감독의 1997년작 <편지>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바로 그 영화) 를 본 것이 처음 영화를 본 기억이겠으나 이것은 불행히도 극장이 아닌 비디오로 본 케이스였으니, 자연히 공은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몫이다. 이 이야기는 순전히 극장에 가서 본 영화를 초점으로 삼고 있으니까. 왜냐고? 극장이라는 공간을 개입시키지 않으면 이 글 자체가 설명이 안 된다. VHS를 고의로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그만큼 그 당시 본 극장이라는 공간이 매우 기이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친척분과 같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러 동네 작은 극장에 갔을 때, 나는 중학교 3학년 때였고 동생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사실 영화 자체에 대해서 심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보기 좋게 내 생각을 빗나갔다. 아무리 12세 이상 관람가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고 하지만 영화는 상당히 기이한 분위기로 스크린을 지배했다. (간사하게도, 그게 영화의 큰 축이라는 것을 안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였다) 그 비주얼이 극장 출입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중학생에게 익숙하게 다가올 리 있었을까?
여기서 이미 이게 '대하기 만만한 영화' 라는 생각은 보기 좋게 날아간 뒤였다. 세상에, 극장에서 처음 봤다는 영화가 이토록 만만하지 않은 놈이었다니. 이런 경험도 참 겪기 힘들다는 생각을 지금 들어 다시 하게 된다.
영화 자체가 미장센이 강렬하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고 갔다면 보다 느낀 충격이 덜했으리라. 물론 느끼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그래도 그에 맞게 마음의 대비는 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이걸 모르고 그냥 주변 상황에 이끌려 극장에 갔다는 거다. 그러니 영화를 봤을 때의 충격이 오죽했을까. 마치 스크린에 눈이라도 달려 있는 것처럼 그 심리를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인지, 그 영상들은 러닝타임 내내 여지없이 내 눈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특히 후반부 비오는 날 우 형사(박중훈 분)와 장성민(안성기 분)의 격투신은 말이다. 형사라는 개와 범인이라는 또 다른 개의 아귀다툼. 중학교 3학년 학생의 눈을 통해 보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이 몇 마디 문장으로 갈무리 가능한 그 비주얼로 강렬하게 마무리되었다. 이야기는 둘째 치더라도 이 장면만큼은 머릿속에 오래오래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문득 그로부터 수 년 뒤, 극장을 내 집 드나들듯까지는 아니지만 애착을 가지고 드나들고 있는 것도 그 때의 기억이 내 심리를 이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때의 기억이 없었다면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이토록 처절하게 느낀 시절이 왔었을까, 영화를 보며 몸을 웅크린 채로 그 스크린 속 모습에 매혹된 어떤 기억이 존재하기라도 했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 한 켠이 아릿해 온다. 어쩌면 지금 극장에 내 마음을 의탁하고 있는 것도 그 기억을 빌미 삼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