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장르 시스템 내에서의 작가의 역할 - 바쟁을 다시 생각한다.

트뤼포(Francois Truffaut)의 열혈논문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 (Une certaine tendance duu cinema francais)」에서 비롯된 작가주의 논쟁으로, 50년대 프랑스 영화계가 일대 거대한 회오리바람에 휩쓸렸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트뤼포는 작가주의를 말하면서 프랑스의 영화 전통, 특히 그 중에서도 시적 리얼리즘과 심리적 리얼리즘을 비판했다. 그는 장 오랑쉬와 피에르 보스트 같은 시나리오 작가들은 통렬한 공격했고, 정통 문예물을 주로 영화화했던 끌로드 오땅 라라, 장 들라노와, 르네 끌레망, 이브 알레그레, 마르셀 빠글리에로 같은 감독들을 무덤에 가야할 작가들로 규정지었다.


훗날 평자들의 지적대로 트뤼포의 작가주의는 기존의 프랑스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하나의 바람몰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트뤼포의 작가주의는 하나의 정책(politique)라고 말하기도 한다. 즉 모든 예술 장르들이 그랬듯이 기존의 주류에 대한 하나의 반발(일종의 아버지 세대에 대한 아들들의 반항에서 비롯된 반성과 거기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것의 등장이라고나 할까?)로서 새로운 영화의 출현, 즉 '누벨 바그'의 출현을 위한 하나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 영화계의 주류였던 시적 리얼리즘과 심리적 리얼리즘은 문학적인 요소들을 과도하게 인용한 작품들이다. 이같은 영화에서 문학언어가 영화언어로 어떻게 바뀌는가(각색의 문제를 포함한)는 감독보다 시나리오 작가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트뤼포는 예외적으로 몇몇 시나리오 작가들을 통렬히 공격했을 것이다. 따라서 트뤼포가 말한 작가주의는 이러한 경향의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연출자인 감독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영화를 감독의 것으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트뤼포의 작가주의 덕분이었으니까 말이다.


감독의 개성과 스타일을 존중하는 작가주의는 넓게 보면 예술의 낭만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의 개성을 중시하고, 모든 규약과 장르, 제약을 작가의 창의력을 방해하는 요소로 생각한 낭만주의. 작가는 자유롭게 자신의 감수성과 관념을 구체화시키며,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많은 낭만주의 작가들이 사회참여에 앞장섰던 것도 이러한 경향의 발로이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들과 드레퓌스 사건에 앞장선 그의 전력에서 그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낭만주의는 규칙과 규제로 가득 찬 사회에 대한 반동이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대전이 끝난 뒤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었고, 이러한 경향은 개인의 개성을 제한하려 하기 마련이다. 작가주의는 그러한 경향에 대한 반동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다면 작가주의와 늘 함께 논의되는 '장르'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장르는 하나의 틀이자 규약이며, 관습화된다. 그것이 어떻게 개성을 중시하는 작가주의와 함께 이야기될 수 있을까? 까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들이 발견한 많은 미국작가들이 장르 컨벤션을 요리조리 이용하고 있는 작가들이란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패기만만한 젊은 트뤼포와 사려깊은 바쟁의 의견을 비교해볼 수 있다. 장르는 작가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의 역량을 표현하는 데 제약이 될 것인가?


트뤼포를 비롯한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 비평가들은 장르 내에서도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헐리우드의 영화작가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바쟁은 그보다는 헐리우드 시스템을 더 높이 평가했다. 자끄 리베트는 장르는 원하지 않는 제약이며, 작가의 개인적인 역량을 표현한 것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했다. 끌로드 샤브롤도 장르의 풍부함으로는 작가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의 몇몇 작가들은 장르의 틀 안에서 자기만의 세계관과 영화언어를 만들어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누벨 바그 키드들은 바로 이런 헐리우드 작가들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바쟁은 헐리우드 장르의 전통이 미국영화를 미국영화답게 하고, 그 어떤 영화보다도 헐리우드 영화를 우수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장르의 전통이 창조적인 기반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즉 작가의 미학적인 개성을 숭배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창조적인 작가의 개성 못지 않게 시스템의 천재성까지도 강조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스티븐 로울리의 글을 빌어, 장르와 작가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더 진행시켜보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장르는 영화 밖에서 도입된 것으로 -주로 문학에서-, 그 기원은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의 장르는 주로 문학의 경우인데, 문학의 장르와 영화의 장르는 조금 다르다. 문학에서는 작가가 누구인지 분명하다. 한 작가의 작품에는 그의 스타일과 개성, 세계관이 묻어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장르는 산업적인 측면과도 좀더 복잡하게 얽혀있다. 즉 장르는 영화제작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 플롯, 세트 같은 것들의 재활용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영화를 파는 방법 역시 장르 관습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성이 높이는 데도 한몫 한다. 따라서 문학의 경우처럼 작가를 영화에서 찾기란 쉽지가 않다. 영화는 공동작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과연 감독이 작가인가, 아니면 시나리오 작가나 프로듀서를 작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실제로 우리는 수많은 헐리우드의 영화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행해지고 있는 기획 영화에서 감독을 그 영화의 작가라고 부르기가 쉽지 않다. 작가주의에서는 아마도 이러한 장르의 역할에 불만이 많을 것이다.


한편 많은 장르이론가들이 장르의 역할을 다음의 두가지 특별한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경제적인 힘으로서의 장르의 역할을 강조한다. 두 번째로는 이미 한물간 사회적 관심사를 통해 보다 보편적이고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아마도 두 번째 부분에서는 작가의 역량이 한몫 할 수 있을 듯 싶다.


장르와 작가주의는 서로에 대한 일종의 견제인 셈이다. 작가주의는 장르 시스템에 대한 속물근성 때문에 생긴 감독의 역할이 평가절하 되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고, 장르 연구는 작가주의 비평이 그러한 속물 근성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장르의 영향력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르와 작가주의는 서로 부딪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쟁은 아마도 이러한 점을 미리 내다본 것 같다. 장르 시스템과 작가주의는 서로 같은 선상에서 변화하고 발전해갈 수도 있다. 즉 장르 쪽에서 보면, 영화는 이전의 장르 영화들과 장르의 관습, 코드, 그 밖의 유산들에서 기인된 것들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반대로 작가주의 쪽에서 보면, 영화는 감독,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와 그외 스탭들의 독특한 관심사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장르가 가지는 장점을 최대한 재활용하면서 작가의 개인적 관심사를 풀어 가는 영화야말로 장르와 작가주의가 만나는 행복한 예가 아닐까 싶다. 바쟁은 이러한 점에서, 헐리우드의 장르 시스템을 잘 활용하는 시스템의 천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작가의 심미적인 취향 뿐 아니라, 시스템을 잘 활용하는 천재... 스티븐 로울리는 스티븐 스필버그를 그와 유사한 예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사실 헐리우드 시스템 내에서 스필버그만큼 창조와 흥행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며 성공한 사람이 있을까? 스필버그는 적어도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만큼 파워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헐리우드 시스템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트뤼포를 위시한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 비평가들이 말하는 작가주의도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기도 하고 더 빛을 발하기도 한다. 트뤼포가 <400번의 구타>를,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들었던 1959년으로부터 46년 후인 2005년 지금, 우리는 어쩌면 초기의 작가주의는 다시 평가되고 새롭게 해석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바쟁이 말한 작가의 천부적인 재능과 시스템의 천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예언 같은 말을 되새겨볼 때 더욱 그렇다. 즉 영화산업이 점점 거대화되고 그 산업 내에서 작가의 진정한 위치는 어디쯤일까...라는 문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지는 걸 보면 오늘날 현실에 맞는 작가주의에 대한 논의는 당분간 더 계속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바쟁은 정말 사려깊은 천재였던 것 같다. 트뤼포를 아들처럼 키운 그인데, 왜 그렇지 않겠는가?

 

2005.10.30
이진이(독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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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1)
  • 윤형철
  • 2009-11-11 22:03:32

작가와 산업이라는 측면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한국의 영화 제작 현실만을 본다면 작가주의에 대한 논의는 시급한 듯 여겨집니다.